세계 투자자금 金등 ‘실물’로 우르르… 원자재 대란 불러
《“달러 사절.”
인도의 관광지 타지마할 사원 매표소에는 지난해 11월 이런 표지가 붙었다.
최근 중동의 산유국 중에서는 달러화 대신 유로화 등으로 원유 결제수단을 바꾸려는 나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기축통화로 군림해 온 달러화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달러 가치가 바닥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떨어지고 있다.》
미국 달러화가 중심인 세계경제체제, 즉 ‘팍스 달러리움’의 붕괴를 점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하지만 명확한 대안세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어 ‘늙은 달러’가 상당 기간 그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 인도 타지마할도 “달러 사절”
달러화가 세계 기축통화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영국의 파운드화가 그 역할을 했다.
1971년 달러화의 금태환이 중지됐고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 마르크화 등에 대해 큰 폭으로 가치를 떨어뜨렸지만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쌍둥이 적자’(경상수지와 재정수지의 동시 적자)는 미국 경제를 서서히 좀먹어 왔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지난해 9월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5.5%. 세계 경상수지 적자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0∼70%나 된다. 성장률 역시 계속 하락해 기축통화국의 조건 중 하나인 ‘경제의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하지만 일본 중국 한국 등 경상수지 흑자국들은 계속 미국의 채권과 주식을 사들였다. 상대적으로 안전 자산이고 뾰족한 대안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나 금융기관들이 달러 자산을 청산하면서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기축통화의 기본적인 조건인 ‘통화가치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 각국 결제통화 유로 등으로 다변화
이란 정부는 지난해 말 석유를 팔 때 달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달러로 원유 대금을 받으면 이후 가치 하락으로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최근의 유가 및 금값 급등에도 달러화 약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달러화로 받은 수출대금의 가치가 줄자 석유수출국들이 기름값을 올려 이를 벌충하려는 것이다. 투기자본들은 안정성이 떨어진 달러 대신에 금이나 각종 원자재를 사들였다.
외환을 달러 형태로 갖고 있던 나라들도 유로, 엔 등의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달러화 가치 하락에 따른 손해를 더는 감수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3분기(7∼9월) 현재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상 최저 수준인 63.8%였다고 최근 밝혔다.
지난해에는 쿠웨이트 시리아가 달러화에 자국 통화가치를 연동하는 페그(peg)제를 폐지했으며 사우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도 뒤를 이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물가가 너무 빠르게 올라서다.
○영향력은 약화되지만 기축통화 유지할 듯
제프리 프렝켈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달러 약세 기조가 지속되면 2022년 달러화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달러 이외의 통화가 단기간에 기축통화의 역할을 대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외환시장에서 하루 평균 달러화 거래 규모는 3조2000억 달러로 전체 거래의 86%에 이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보도에서 “기축통화로서 달러를 대체하려면 세계 금융시스템을 다시 짜야 하는 방대한 작업”이라면서 “달러 가치가 떨어졌지만 거래 규모와 각국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 채권시장 비중에서 달러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