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개입이 환율정책 변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재정부 내에서는 여전히 “그동안 고(高)평가됐던 원화 가치가 제자리를 찾는 중”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시험대에 오른 환율정책
‘환율 주권론자’인 강만수 장관 취임 이후 재정부는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환율정책 기조를 잡았다. 고환율로 물가가 오르겠지만 수출이 개선돼 경상수지 측면에서는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성향이 노출되면서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원화가치 하락 쪽에 ‘베팅’했다. 미국의 신용 위기로 유동성 확보에 나선 헤지펀드들은 원화가치 하락으로 환차손 볼 것을 우려해 다른 나라 주식에 앞서 한국의 주식과 채권부터 내다 판 것.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고위 관계자는 “어차피 대외 여건이 환율 상승 방향이라면 정부가 나서서 이를 증폭시킬 필요는 없었다”며 “현 상황에서 적절치 않은 신호를 보내는 바람에 환율 급등이 가속됐다”고 지적했다.
결국 강 장관이 취임한 지난달 29일부터 17일까지 12거래일 동안 원-달러 환율은 무려 90.2원이나 올랐다. 재정부는 지난주 후반부터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한국은행과 협의해 17일 한은이 구두개입하도록 했다. 하지만 시장이 패닉에 빠진 상황에서 이는 약효가 없었다.
강 장관은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이성태 한은 총재, 전광우 금융위원장, 김중수 경제수석,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등이 참석한 ‘서별관회의’를 주재한 뒤 또 한 번의 구두개입을 했다. 외환딜러들은 “이날 오전 중 정부 물량으로 추정되는 총 10억 달러 정도의 매도 주문이 나오자 환율이 순식간에 급락했다”고 전했다.
일부 재정부 간부들은 “아직 때가 아니다”는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이날의 개입은 강 장관이 직접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의 경제예측 부문 자회사인 무디스이코노미닷컴도 “한국은행이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가중되고 있는 물가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적절한 외환시장 개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향후 환율정책 변화 여부에 주목
시장 참가자들은 그동안 환율 급등을 방관하던 정부가 본격적인 개입에 나선 만큼 당분간 환율 급등세가 진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환율정책 기조가 선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실제로 재정부의 환율정책 라인은 여전히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환율 개입을 통해 물가를 잡으려 하다가는 물가는 물가대로 놓치고 경상수지와 성장률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재정부 당국자는 이날 개입에 대해 “정부는 급격한 환율 상승으로 우리 경제 전체가 충격을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도 “경제주체들이 높은 원-달러 환율 수준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것으로 해석해 달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당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물가 안정을 위해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요구할 수밖에 없어 앞으로 양 진영의 조율 결과가 주목된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