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주 디먼 회장을 금융위기 속의 ‘승자(winner)’로 꼽으면서 덧붙인 평가다.
JP모건은 최근 굴지의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단 사흘간의 협상으로 헐값에 인수한 데 이어 비자카드 상장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암울한 금융업계의 냉소적 전망을 무색하게 만든 대성공이었다.
이런 JP모건의 뒷심은 ‘위기를 해결해줄 구원투수’라는 평가 속에 월가 최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 속전속결 인수 전문가도 놀라
JP모건이 베어스턴스를 사들이기로 했다는 16일 발표는 월가를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주당 2달러(총 2억3600만 달러)라는 인수 합의 가격은 불과 1년 전 170달러를 웃돌던 베어스턴스 주가의 1.1%밖에 안 된다.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위치한 베어스턴스의 본사 건물(약 14억 달러 추정) 하나만 팔아도 매각 금액보다 더 많이 남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더구나 인수 검토부터 발표까지는 7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협상의 난항 여부를 논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대형 은행을 낚아챈 순발력에 전문가들도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JP모건은 베어스턴스가 정상화될 경우 연간 10억 달러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추가로 드러날 부실을 감안해 책정한 60억 달러의 인수비용이 아깝지 않은 투자라는 말이 나온다.
씨티은행의 키스 호로위츠 애널리스트는 “베어스턴스는 JP모건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사업 분야를 강화해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새뮤얼 헤이즈 교수도 “JP모건은 베어스턴스로부터 방적기에서 실 뽑아내듯 돈을 뽑아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퍼지면서 JP모건의 인수 발표 직후 베어스턴스의 주가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결국 6월 주주총회에서 이번 인수 합의를 승인할지가 관건으로 대두하자 JP모건은 다시 인수 가격을 주당 10달러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4일 보도했다.
인수 발표 이틀 뒤인 18일에는 비자카드의 기업공개(IPO)까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비자카드는 179억 달러의 공모 자금을 조달하며 미국 사상 최대 규모의 상장 기록을 세웠다. 2000년 통신업체 AT&T가 만들어낸 106억 달러 기록을 갈아 치웠다. 세계적으로도 중국 공상은행(220억 달러)에 이어 2번째 큰 규모다.
비자카드의 6대 주주은행 중 가장 규모가 큰 JP모건은 이번 상장으로 최소 13억6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게 됐다. CNN머니는 “비자카드 상장이 최고 적기에 이뤄졌다”며 “이로써 JP모건은 베어스턴스 인수를 위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위기 때 돋보이는 JP모건의 진가는 오랜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은행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프랑스에 5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해 ‘월가 역사상 가장 큰 해외투자’ 기록을 세웠다. 1895년 미국이 경제위기를 맞자 해외에서 금을 매입해 시장을 안정시켰고, 1907년에는 파산할 처지에 놓인 뉴욕 시의 구원투수로 나서기도 했다.
한때 금융가의 패배자로 인식됐던 디먼 회장의 능력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는 과거 씨티그룹에서 스승처럼 모시던 샌디 웨일 회장에게서 버림받고 권력싸움에서 밀려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하지만 뱅크원의 최고경영자(CEO)로 옮겨 간 뒤 거침없는 구조조정으로 비실대던 이 회사를 부활시키며 월가의 중심에 복귀했다.
이어 베어스턴스 인수로 다시 실력을 입증했다. 그는 사실상의 협상 시한인 일요일(16일) 오전 “위험이 너무 커서 인수 못 하겠다”며 발을 빼는 전략으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속을 태웠다. 결국 FRB로부터 유례없는 300억 달러의 인수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금융사의 연쇄 파산을 우려한 FRB가 절박한 상태에서 JP모건에 헐값으로 떠넘긴 것일 뿐 공정하게 이뤄진 거래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강제 결혼(shotgun marriage)’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FRB가 베어스턴스 주주들에겐 손해를 입히면서 JP모건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특혜를 줘 거래를 성사시켰다”며 “일부 투자자는 이를 대로변의 강도짓(highway robbery)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