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온도 1도 높이면 -270억
“으스스할 정도로 춥게 에어컨을 틀어 놓는 곳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경기 안양시 성문고 2학년 이모(17) 양은 지난해 7월 중순∼8월 중순 온도계를 들고 다니며 집 근처 건물의 실내온도를 측정했다.
조사한 건물 15곳의 실내온도는 18∼22도로 여름철 적정온도(26∼28도)보다 크게 낮았다.
은행의 실내온도는 19도였고 대형마트는 18도였다. 시립도서관은 20도, 우체국은 21도였다. 가장 온도가 높았던 동사무소는 22도였다.
이 양은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 찬기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함께 돌아다녔던 배모(17) 양도 집 근처 보건소의 실내온도를 측정한 뒤 보고서에 “서늘했다”고 기록했다.
지도교사 황우원(35) 씨는 “조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에어컨 낭비가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며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의 800만 가구에서 에어컨을 틀어 놓은 시간은 가구당 255시간. 평균 439kWh(전기요금 4만8290원어치)의 전력을 에어컨에 사용했다.
800만 가구가 여름철(6월 중순∼9월 중순) 하루 1시간씩 에어컨을 덜 틀어 놓으면 1364억 원을 절약한다. 에어컨 설정 온도를 1도 높이면 연간 에어컨 소비전력량의 7%를 절감해 270억4200여만 원을 아낄 수 있다.
적정온도를 지키지 않는 것은 여름만이 아니다. 겨울철 실내 적정온도는 18∼20도지만 시민단체 조사에 따르면 가정과 사무실의 평균 실내온도는 23∼25도로 나온다.
난방 온도를 3도 낮추면 가정과 상업용 난방비의 21% 정도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돈으로 계산하면 1조3000억 원이다. 1도를 낮추면 에너지 사용량을 7% 줄일 수 있다.
에너지시민연대가 지난해 7월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서울시내 공공기관과 백화점, 은행 등 71곳 가운데 실내 적정온도를 지키는 곳은 21곳(29.5%)에 불과했다.
서울대병원 조비룡(가정의학과) 교수는 “실내외 온도 차가 5도 이상 되면 우리 몸이 36.5도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일을 하므로 소화불량과 두통, 심장질환, 감기에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적정온도 지키기.’ 구호가 아니라 이제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전력 사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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