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은 21일 국부펀드가 미국발(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 이후 흔들리는 세계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4월 중 국부펀드 운용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정에 착수키로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3일 전했다.
IMF 통화금융시장국의 하이메 카루아나 국장은 “10월쯤 선보일 이 가이드라인은 그동안 규모나 운용 방식이 잘 알려져 있지 않던 국부펀드에 대한 막연한 우려를 완화시켜 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자금을 재원으로 하는 국부펀드는 세계의 부동산, 주식, 채권 시장에 대한 투자를 통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90년 5000억 달러에 불과하던 국부펀드의 규모는 러시아 및 중국의 약진과 고유가로 인한 산유국들의 오일머니에 힘입어 3조 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12조 달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그러나 투자 대상이 된 서구 국가들은 국부펀드의 자금 집중력을 두려워한다. IMF는 올해 2월 보고서에서 국부펀드 총자산의 70%가 상위 5개 펀드에 집중돼 있고, 상위권 펀드의 대부분은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중국 러시아 등 산유국과 신흥 경제국이 장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주는 2월 이 같은 국부펀드가 자국의 안보와 직결된 산업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국부펀드의 제 원칙’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국부펀드가 투자국 정부의 지시를 받거나, 투자가 호주의 안보에 영향을 미칠 경우 규제한다는 내용이다.
미국도 20일 아부다비, 싱가포르와 국부펀드를 오직 상업적인 목적으로만 운영하며 투자유치국(미국)의 규제를 존중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하지만 미국은 신용경색 해결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어서 국부펀드를 견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투자는 막아야 하지만, 이것이 미국 시장에 국부펀드를 비롯한 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국부펀드는 지난해 부실 위기를 겪은 일부 대형 은행에 가뭄에 단비 같은 역할을 했다. 지난해 여름 이후 ‘두바이 인터내셔널 캐피털’을 비롯한 국부펀드가 서구의 투자은행 4곳에 투입한 자금만 493억 달러에 이른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3일 전했다.
국부펀드의 이 같은 성장세에 비춰 볼 때 일부 서구 국가는 앞으로 불평도 못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해 아부다비투자청이 씨티그룹에 75억 달러를 쏟아 붓고 중국 국부펀드가 모건스탠리에 거액을 투자했지만 실적이 좋지 않았다며 “서구 투자은행들의 손실이 계속 쌓여 가면 국부펀드도 투자할 입맛(appetite)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