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이미 ‘民의 시대’인데…정부 입씨름에 시장만 상처

  • 입력 2008년 3월 31일 02시 57분


금리-환율 논쟁을 보고

거시경제정책의 양대 축인 금리-환율을 둘러싼 최고 당국자들 간의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최중경 재정부 차관까지 가세해 엇갈린 의견이 난무했다. 신호등의 빨간불과 파란불이 동시에 켜지면서 정책리스크가 커지자 시장참여자들은 ‘관망’으로 움츠러들었다. 거래 공백은 시장 변동성을 키워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정책 마찰 가능성은 새 정부 출범 이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기는 했다. 양측의 전반적인 경제시각, 특히 물가안정과 경제성장에 대한 견해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강 장관 등은 성장(파란불)을 위해 금리 인하와 환율 상승이 필요하다고 보는 반면, 한은은 치솟는 물가를 고려할 때 금리와 환율의 안정적 운용(빨간불)을 선호하고 있다. 또 ‘미국 2.25%, 한국 5%’의 금리 차로 인해 금융 불안이 야기될 수 있으므로 국내 금리를 인하하자는 재정부의 주장에 대해 “현 시점에서 금리 인하는 내수 진작 효과는 없고 부동산 거품만 부풀린다”고 한은은 반론을 편다.

한국은 ‘소규모 개방시장’이라는 한계를 안고 산다. 국내외 금리 차가 확대되면 차익 거래를 노리는 외국인이 많아져 이 움직임에 따라 금리가 급변동할 수 있다. 국내 채권시장이 크지 않아 더욱 그렇다는 점에서 재정부 논리는 타당성이 있다. 한은 주장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우리 경제는 과거 저금리 기간에 실물경제의 호황을 즐기기보다는 유동성 과잉으로 자산버블만 경험했다. 당장은 물가 안정이 시급해 보인다. 그렇다고 실물경제를 방치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6% 성장은 차치하더라도 성장잠재력 수준을 하회하는 경기 둔화가 우려되고 있다.

현 상황을 종합하면 ‘저성장-고물가라는 국내 상황만 보면 금리정책 선택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 금융시장과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전 세계적인 자금 경색으로 돈의 흐름이 왜곡돼 있어 국내외 금리 차에 따른 위험이 크지 않다. 그러나 잠깐이다. 경제원리에 따라 돈이 움직이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세계 금융시장과 괴리된 금리와 환율 흐름의 현재와 그 미래가 더욱 염려되는 까닭이다.

관가엔 “경제침체 국면에서 비용견인(cost-push) 인플레가 발생할 때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가 가장 운이 없는 관료”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저성장-고물가하에서 정책 선택이 그만큼 어렵고, 어떤 선택을 해도 훗날 공정하게 평가받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통화정책을 맡고 있는 중앙은행도 마찬가지다. 이런 때일수록 정책의 파인 튜닝, 당국 간 파인 튜닝이 긴요하다.

경제는 이미 민(民) 주도의 시대다. 그러나 정부 내 입씨름으로 시장이 상처 입고 있다. 이는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 격이다. 원래 치고받는 논쟁은 대학이나 연구소의 몫이다. 당국자에겐 언론의 자유가 없다. ‘밀실에서 그들만의 끝장토론’으로 나오는 한목소리를 기대해 본다.

신용상 금융硏거시경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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