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측 “단순한 탈루… 공소시효도 대부분 지나”
■ 삼성특검, 李회장 소환 이후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해 온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1300여 개의 차명계좌 중 일부 거래와 관련해 양도소득세 포탈 혐의를 적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특검팀이 차명 거래에 양도세 포탈 혐의를 적용하게 될 경우 사법사상 최초의 일이어서 앞으로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상된다.
▽특검의 논리=차명계좌 각각의 주식 거래는 양도세 비과세 대상이다. 하지만 삼성 측 주장대로 차명계좌로 보유한 계열사 주식이 모두 이 회장의 재산이라면 막대한 세금을 포탈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법인 지분을 3% 이상, 특수 관계인 지분을 포함해 5% 이상 보유한 대주주 지분의 거래 차익에는 모두 20%의 양도세가 부과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이 회장은 양도세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으로선 이 회장에 대한 형사처벌과 포탈세액의 2∼5배에 이르는 벌금, 별도로 국세청 세금 추징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특검팀 일부에선 포탈세액이 100억 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회장의 사재를 차명 투자한 것”이며 ‘단순 탈루’라고 줄곧 반론을 펴 오던 삼성 측의 자세에도 최근 들어 기류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최종 확인되면 특검팀은 국세청의 고발 없이도 특검팀이 이 회장을 기소할 수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적용 수준(10억 원)을 넘기 때문이다.
▽기소 뒤 전망=이 회장의 기소 여부가 최종 결정될 때까지 특검팀과 삼성 측의 줄다리기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식 거래 차익에 대한 양도세 포탈 혐의는 유례가 없어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측은 △적극적인 세금 포탈 의사가 없었고 △특가법 조세 포탈 혐의의 공소시효(7년) 내의 차명계좌도 많지 않으며 △해당 주식 계좌들의 거래 횟수도 많지 않다는 점을 내세워 무죄 주장과 함께 혐의 적용 범위도 최대한 줄이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특검팀은 대부분의 차명계좌들이 몇 차례 거래 이후에도 차명계좌로 남아 있다는 점 등이 조세포탈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라는 논리를 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차명계좌 운용 과정을 둘러싼 당시의 정황을 깔끔하게 정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앞으로 특검팀이 이 회장을 기소하더라도 당시 정황을 둘러싸고 특검팀과 삼성 측의 법리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차명계좌를 통해서 결과적으로 조세 포탈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 동기나 배경이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공소 유지가 힘들어진다”고 설명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유지해 오던 차명계좌를 현금화했거나 해당 지분을 이 회장이 매입해서 가지고 있다면 차명은 아니며 형사처벌은 어렵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또 삼성화재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서는 충분한 입증이 이뤄져 관련자들을 횡령 혐의로 형사처벌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차명 보유 의혹에 대해서도 특검팀은 형사처벌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으나 삼성 측은 탈루라고 맞선다.
▽에버랜드 관련 ‘불구속 기소’=특검팀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및 제3자 배정 등의 과정을 이 회장이 직간접으로 지시했는지, 또는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집중 조사를 벌였다.
특검팀 내부에선 이 회장을 기소해야 한다는 기류가 더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버랜드 사건의 사실관계는 대부분 다툼 없이 정리됐지만 특검팀과 삼성 측 모두 이 회장 공모 여부에 대해 ‘법원 판단을 받아 보자’는 의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버랜드 사건과 관련해 특검팀이 이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인 허태학, 박노빈 씨처럼 이 회장도 불구속 기소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럴 경우 이학수 부회장이나 김인주 사장 등 그룹 핵심 임원 모두 이 회장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지 않을 것으로 법조계 인사들은 보고 있다.
▽로비 의혹 수사 성과 없어=특검팀은 로비 의혹과 관련해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 외에는 다른 증거가 없거나, 공소시효가 모두 완성됐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김성호 국가정보원장에게서 서면 형태의 해명을 받아 검토한 결과 김 변호사의 폭로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