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외화자금 수급사정이 악화되면서 기업 하나 국민은행 등 상당수 시중은행이 최근 신규 엔화대출을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7일 금융계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지난달 말부터 엔화대출 신규 상담 및 대출을 전면 중단했다. 기업은행은 3월 말 현재 엔화대출 잔액이 3329억 엔으로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많다.
또 하나은행은 4월 초부터, 국민은행은 1월부터 신규 엔화대출을 내주지 않고 있다.
기업은행의 한 외화대출 담당자는 “영업점 창구마다 엔화대출 문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원화대출로 받으라’고 안내하고 있다”면서 “외화자금 수급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한 엔화대출을 언제 재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엔화대출을 중단한 것은 엔화 공급이 줄었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글로벌 신용경색이 발생하자 일본 은행들은 최근 엔화대출을 대폭 줄였다.
또 한국은행이 3월 말 기업의 운전자금용 외화대출에 대해 만기 연장을 해주도록 각 은행에 권고하면서 은행으로 돌아올 예정이던 엔화 대출금의 상환시기가 미뤄진 것도 엔화대출 재원 부족의 원인이 됐다.
반면 엔화대출 수요는 크게 늘고 있다. 3월 들어 원-엔 환율이 급등(원화가치는 하락)하자 향후 환율 하락(원화가치는 상승)을 기대하고 환차익을 노린 기업들의 엔화대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100엔당 원-엔 환율은 지난달 17일 1,061.58원까지 치솟은 뒤 이달 7일 950.75원으로 내렸다. 지난달 17일 1000만 엔(당시 환율로 1억615만8000원)을 엔화로 대출받았다면 이후 환율 하락 덕에 7일 기업이 상환해야 할 원금은 9507만5000원으로 1108만3000원 줄어드는 셈이다.
이런 기업들의 엔화대출 수요 증가로 3월 중 기업 하나 신한 우리 국민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은 16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며 2월 말보다 88억 엔 증가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윤석 박사는 “외화대출 규제가 완화되면서 무분별한 외화대출 신청이 늘었다”면서 “일부 고객이 불편을 겪기는 하겠지만 은행들이 외화대출을 제한하기 시작하면서 외화대출 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