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자마자 숨도 돌리기 전에 열변부터 토해져 나왔다. 결국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나눈 건 이야기가 시작되고 나서 10여 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김포 농사꾼인 조신희(40)씨는 주식 투자를 통해 농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수익을 올리는 사람이다. 10년 전 1000만원으로 시작했다가 6개월 뒤 1억원을 채워 본격 투자에 나섰고, 종잣돈은 1년 만에 2억 5000만원이 됐다. 5년 뒤 10억원으로 몸집을 불린 뒤 지금은 주식에서만 그 세 배쯤 되는 자금을 굴리고 있다.
고수의 세계에서 본다면 ‘그 정도(?)’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간 큰 사람들도 없지 않을 성싶다. 하지만 조신희씨는 투자 전문가도 아니고 대박과 한 방에 목숨을 거는 도박사도 아니다. 그저 본업인 농사일에 충실하면서 차근차근 투자의 내공을 쌓아온 평범한 일반인 투자자 중의 한 명일뿐이다.
무엇보다 조씨가 ‘매력’적인 것은 나름의 투자철학과 소신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앞도 뒤도 없는 ‘묻지마 투자’. 좋아하는 것은 ‘가치투자’이다.
- 가치투자가 뭡니까?
“길목을 지키는 거죠. 그래놓고 기다리는 겁니다. 우리나라 시장은 상당히 왜곡돼어 있어요. 그래서 갭(틈)이 생기는 거죠. 그 틈을 ‘먹는 것’이 바로 가치투자입니다.”
-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죠. 상장회사 중에는 서울 또는 수도권에 보유한 토지의 가액이 시가총액보다 300∼400많은 기업들이 있어요. 부채도 거의 없죠. 즉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밖에 안 되는 겁니다. 한 마디로 회사를 지금 당장 청산하더라도 투자금액의 3배를 건질 수 있다는 얘기예요. 이런 회사들을 찾아 투자하는 거죠. 의외로 많아요. 지금 당장 20개도 대라면 댈 수 있죠.”
조씨의 투자 원칙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우선 1주당 순자산이 현재의 주가를 상회하는 기업, 즉 PBR이 1배 미만인 회사에 투자한다. 회사는 어떤 외부적인 변수에도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기에 부채비율이 70∼80미만이면 좋다.
거래량의 많고 적음은 고려하지 않는다. 결국 주가는 기업이 지닌 내재가치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투자자들이 바이블처럼 숭앙해마지 않는 차트도 무시한다. 오직 회사의 순자산상태와 현재의 주당순이익(EPS), 이를 근거로 앞으로 순이익 증가에 따른 자기자본의 증가 정도를 예측할 뿐이다.
조씨는 우선주를 ‘우선적’으로 좋아한다. 보통주에 비해 우선주의 값이 50도 안 되는 종목은 완벽에 가까운 사냥감이다. 그런 뒤 우선주의 가격이 보통주의 80이상 될 때까지 기다린다. 삼성전자처럼 우선주가 보통주의 70를 상회하더라도 우선주 투자가 유리하다고 본다. 배당금이나 유보금이나 모두 주주의 돈인데, 이런 권리에 있어서 우선주가 보통주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고로 더 많은 배당금과 유보금을 향유할 수 있다.
조씨는 소위 ‘정보’에 의존하지 않는다. ‘내 귀에 들어오면 그건 이미 정보가 아니다’란 생각을 갖고 있다. 자신이 정보를 찾아서 가르쳐줬으면 가르쳐줬지 남의 정보는 아예 기대를 안 한다. 자기 분석없이 정보에만 매달리는 사람들, 신문 하나만 보고 맹신하는 사람들은 주식 투자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스스로 분석을 하되 분석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펀드에 맡기라고 권한다.
조씨도 처음에는 기초적인 용어 개념조차 몰랐다. 신문을 차근차근 읽으며 공부했다. 요즘엔 인터넷에 몇 글자만 치면 답이 주르륵 나오지만 10년 전만 해도 스스로 자료를 찾아야 했다. 경제용어 사전도 한계가 있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증권사나 해당 업체에 전화를 해 꼬치꼬치 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히려 조씨가 그들에게 가르쳐주는 ‘갑’의 위치에 서게 됐다.
“사람들은 아파트는 10년씩 기다리면서 주식은 1년을 못 기다려요. 심지어 하루도 못 기다리죠.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포도농사를 지으면서 얻은 철학이랄까, 농사는 욕심을 부리면 안 돼요. 1년을 묵묵히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죠. 그리고 미시적인 것뿐만 아니라 거시적인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밤에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배의 불빛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나아가는 겁니다.”
조신희씨는 포도농사를 짓듯 주식을 ‘짓는’다. 씨를 뿌리고, 묘목을 가꾸고, 거름과 약을 치고는 수확을 기다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포도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양질의 토양이다. 조씨는 오늘도 저평가된 양질의 기업에 가치투자라는 씨를 뿌린 뒤, 묵묵히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
김포=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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