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22일 발표한 경영쇄신안에 따라 삼성 의사결정 구조의 무게중심은 그룹 전략기획실에서 사장단협의회 및 각 계열사로 옮겨지게 된다.
그동안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왔던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장은 “이제 각사의 독자적인 경영역량이 확보됐고 사회적으로도 그룹 경영체제에 대해 일부 이견이 있는 점을 감안해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폐지로 삼성의 핵심 경쟁력으로 분석되던 ‘회장-전략기획실-각 계열사 CEO’의 이른바 삼각편대 경영은 불가능하게 됐다.
삼성은 전략기획실의 대안으로 현행 사장단회의를 협의체 기구인 사장단협의회로 ‘업그레이드’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또 사장단협의회를 실무 지원하고 대외적으로 삼성그룹의 창구와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행정서비스를 전담하는 업무지원실을 협의회 산하에 두기로 했다. 업무지원실은 임원이 2, 3명에 그치는 소규모 조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삼성은 향후 계열사별 독자경영체제를 기본으로 하되 계열사 간 업무 조정 등은 사장단협의회를 통해 하는 이른바 ‘집단경영체제’의 틀을 꾸려 나갈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사장단회의는 교양 강의를 듣거나 계열사 간 정보 교류의 장으로 활용됐으며 의사결정기구는 아니었다”며 “앞으로 사장단협의회에서 그룹 내 중복사업 조정이나 공동 관심사 등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장단회의는 그동안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열렸으며 전략기획실 주요 관계자를 포함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30여 명이 참석했다.
앞으로 운영될 사장단협의회의 참석 대상자도 전략기획실 관계자를 제외한 계열사 최고경영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 계열사의 독립경영체제는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실장은 “이건희 회장이 퇴진하고 전략기획실이 해체되면 계열사별로 전문경영인에 의한 독자적인 경영체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공식적 의사결정 구조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룹의 대규모 투자 결정이나 신사업 진출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 사장단협의회가 책임을 지고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최대 주주인 이 회장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 쇄신으로 1959년 고 이병철 창업주의 비서실로 출발한 전략기획실은 49년 만에 간판을 내리게 된다.
전략기획실은 그룹 단위의 장기 경영비전과 계열사 간 중복사업 방지, 대규모 투자 조율, 사업구조 조정, 자원 배분, 인사 등을 맡아 왔다.
전략기획실 폐지에 대해 삼성 내부에서는 “그룹의 핵심조직이면서 스피드 경영을 가능케 했던 전략기획실 역할을 사장단협의회가 제대로 이어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