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 자율’ 모드 전환 연착륙이 관건

  • 입력 2008년 4월 24일 02시 58분


■ 경영시스템 변화 맞은 삼성

전략실 해체후 조정기능 약화 불가피

계열별로 전략 수립 ‘소그룹 체제’ 실험

3명 공석 등기이사 당분간 안 채울듯

삼성그룹이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고 계열사 독자경영체제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관리의 삼성’으로 압축되던 경영시스템이 근본적인 변화를 맞게 됐다.

재계에서는 ‘자율의 삼성’이라는 새 경영체제가 정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계열사 간 중복투자 조정, 그룹 차원의 중장기 경영전략 수립 등 그동안 삼성의 강점으로 꼽히던 기능이 어떻게 정리될지 주목을 받고 있다.

○ ‘컨트롤 타워’ 공백에 대한 우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로 각 계열사의 사업부서는 크게 3가지 과제를 추가로 안게 됐다.

우선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는 과감한 투자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대표적인 장치산업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의 반도체총괄이나 LCD총괄은 연간 투자 금액이 각각 수조 원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누군가 궁극적인 책임을 져주지 않으면 단기 성과에 급급한 사업만 추진하거나 책임질 일 없는 ‘안전한 길’만 가려는 풍토가 생겨나 삼성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해가 대립하는 계열사나 사업부서 간 조정 역할도 문제다. 1995년 그룹에서 조정하기 전까지 삼성전자와 삼성SDI가 액정표시장치(LCD) 사업 주도권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맞섰던 사례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특유의 시너지 효과가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다. 예컨대 박종우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DM)총괄 사장은 지난해부터 삼성테크윈의 카메라사업본부장을 겸직하고 있다. 삼성이 차세대 주력 상품으로 키우고 있는 디지털카메라의 마케팅 역량을 극대화하려는 조치다. 계열사 독자경영체제가 강화되면 이 같은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

○ 업종별 협의체 운영 가능성

삼성은 ‘컨트롤 타워’ 실종에 대한 해법으로 현행 사장단회의를 협의체인 ‘사장단협의회’로 격상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계열사별 독자경영체제를 기본으로 하되 계열사 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은 사장단협의회에서 논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 내부에서는 ‘의사결정기구가 아닌 사장단협의회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특히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거나 전문성이 강한 분야를 사장단협의회에서 일일이 논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그룹 내 관련 업종 간 협의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각 업종의 좌장이 각종 현안을 교통정리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예컨대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테크윈 등 전자계열사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이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 금융계열사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이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등 중공업·기계계열사 △이상대 삼성물산 사장이 에버랜드 호텔신라 등 무역·서비스계열사 △고홍식 삼성토탈 사장이나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이 화학계열사 간 각종 협의나 의사결정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삼성은 실제로 1994년부터 1998년까지 계열사의 자율경영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그룹을 전자, 기계, 화학, 금융 등 4개 중핵소그룹과 1개의 독립사업군으로 재편한 ‘소그룹 경영체제’를 운영한 바 있다.

○ 삼성의 미래는 자율과 창의에 달려

삼성 안팎에서는 “이번 경영쇄신안 성공의 열쇠는 톱다운 방식의 ‘관리의 삼성’에서 보텀업 방식의 ‘자율과 창의의 삼성’으로 어떻게 연착륙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가 제대로 정착돼 경영 투명성이 강화되고 계열사 간 조정기능도 자연스럽게 작동한다면 삼성의 경쟁력은 오히려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특히 총수 일가나 특정 경영인이 모든 계열사를 일일이 챙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를 맞아 전문경영인 체제 강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한편 삼성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등기이사 수는 김인주 사장이 3월 사임한 데 이어 이건희 회장까지 퇴진하면서 당초 6명에서 4명으로 줄었다. 여기에 이학수 부회장까지 6월에 물러나면 3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회사 정관상 ‘사내 등기이사는 3명 이상으로 한다’고 돼 있는 데다 새 등기이사를 임명하려면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야 해 당분간은 현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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