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화재가 제일화재의 최대주주 보유 지분을 인수하는 대가로 기존에 제안했던 주가의 2배 수준인 3만 원을 제시했다. 이 회사는 30일 오후 6시까지 답변을 기다린 뒤 공개매수를 통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설 방침이다.
원명수 메리츠화재 대표이사 부회장은 28일 이사회를 연 뒤 “제일화재 최대주주 김영혜 이사회 의장의 지분 약 21%를 주당 3만 원, 한화 계열사 등이 보유한 지분 14%를 주당 2만 원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서를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들은 김 의장의 동생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백기사’로 나서면서 제일화재 인수에 실패할 가능성이 커지자 메리츠화재 측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것으로 분석했다. 이날 제일화재 주가는 개장 초 하한가까지 떨어졌지만 메리츠화재의 발표 후 급등세로 돌아서 전날보다 8.43% 오른 1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 제일화재 향배 김 의장 선택에 달렸다
이날 메리츠화재의 원 부회장은 “김 의장이 24일 보내온 답변서에 ‘인수가격을 다시 평가해 달라’는 의견을 보내와 다시 한 번 가격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메리츠화재의 다른 관계자는 “답변서를 보내기 전 김 의장 측근이 주당 5만 원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값만 맞으면 김 의장이 지분을 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앞서 메리츠화재는 17일 김 의장에게 “주당 1만5525원에 보유 지분을 넘길지 여부를 24일까지 알려 달라”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제일화재 측은 “김 의장이 ‘인수 가격이 낮다’고 한 것은 인수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한화그룹의 한 관계자는 “메리츠화재가 가격을 올린 것은 인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명분을 쌓고, 적대적 M&A가 지속된다는 기대감을 시장에 줘 주가가 오르는 틈을 타 보유 지분을 처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과 관련해 우리투자증권 한승희 연구원은 “인수계획이 발표되기 전(16일) 제일화재 주가가 1만350원이었던 만큼 김 의장이 메리츠화재 측에 지분을 팔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화그룹 측의 주장처럼 메리츠화재가 이미 ‘철수 수순’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원 부회장도 이날 “(적대적 인수가) 무모한 경쟁이라고 판단되면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책)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해 지분매각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 적대적 공개매수, 성공 가능성 낮아
김 의장 지분을 넘겨받지 못한다면 메리츠화재가 공개매수를 시작하더라도 적대적 M&A에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28일 현재 김 의장과 한화그룹 계열사의 보유지분은 총 34% 정도. 이에 비해 메리츠화재 측 지분은 18일 이후 11.5%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강승건 대신증권 연구원은 “메리츠화재가 공개매수를 시작해도 한화그룹이 ‘대항 공개매수’에 나선다면 한화와 지분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한화그룹 측 부담도 커지고 있다. 비상장 계열사들이 제일화재 지분매입에 나선 ㈜한화, 한화석유화학의 주가는 연일 급락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최후통첩 시한’인 30일을 전후해 메리츠화재가 공개매수를 포기하거나, 김 의장이 지분을 메리츠화재에 넘기는 두 가지 시나리오 중 한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