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일부방송 “한국인 광우병 취약” 주장 논란

  • 입력 2008년 5월 1일 02시 57분


‘미국쇠고기 괴담’에 소비자 불안

정부 “병걸린 쇠고기 먹을거란 전제 잘못”

국내 의학계선 “근거 없다” “위험” 엇갈려

쇠뼈쓰는 설렁탕집 “손님 발길 끊겨”울상

지난달 29일 통합민주당 최성 의원이 “한국인은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 이어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인간 광우병 시비 논란으로 하루 종일 들끓었다.

▽괴소문 확산=PD수첩은 29일 방송에서 “서양인은 광우병 쇠고기를 먹으면 인구의 35%에서 발병하지만, 한국인은 유전자 구조가 광우병에 취약해 인구의 95%에서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후 인터넷을 통해 광우병에 대한 괴소문이 확산되고 있고 설렁탕집 등 식당들이 손님이 줄어 울상을 짓고 있다.

서울 광화문 부근의 유명 설렁탕집 종업원 이모(30) 씨는 “광우병 방송 이후 오는 손님마다 미국산 쇠고기를 쓰느냐고 물어 본다”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광우병 관련 글이 600건 이상 올라 왔다. 중학생 자녀 둘을 뒀다는 김모 씨는 “학교 홈페이지에 미국산 쇠고기를 급식에 사용하면 알려 달라는 글을 올렸다”며 불안해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도 수만 개의 항의성 글이 올라와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실에서 29일 밤 방명록을 폐쇄했다.

임모 씨는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해 편파적으로 방송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특히 유전자 구조의 차이로 발병 확률이 높다는 내용 등은 너무 성급한 결론 아니냐”고 말했다.

▽“도축 때 특정위험물질 제거”=최 의원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한국인의 유전자 구조는 광우병에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그런 얘기를 저는 들은 바 없다”고 답변하자 최 의원은 “그런 정보도 없이 미국산 쇠고기 도입에 대해 단정적으로 ‘우려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농림수산식품부 당국자는 “최 의원의 발언은 광우병에 걸린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인의 식탁에 오른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도축 과정에서 특정위험물질(SRM)을 모두 제거하게 돼 있는 데다 도축 과정에서 SRM이 남아 있더라도 검역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 vs “위험” 엇갈려=의학계에서는 인간 광우병 논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김종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인간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며 “인간 광우병은 고기를 먹을 때 생기지 않고 광우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인 ‘프리온’이 들어 있는 소의 뼈나 척수 등을 매일 먹지 않는다면 인간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량의 프리온 단백질을 먹는다고 해도 그 단백질이 뇌까지 가서 인간 광우병에 걸린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를 주사를 통해 인간의 뇌에 넣으면 병에 걸리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해관 성균관대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현재의 방역과 검역시스템으로는 광우병에 걸린 소를 적발하기 힘들고, 뼈를 넣은 설렁탕과 꼬리곰탕 등을 즐겨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 때문에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다만 살코기만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2004년 영국에서 인간 광우병 환자 124명의 프리온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광우병과 관련이 있는 물질인 메티오닌 유전자형을 물려받은 비율이 약 50%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38%로 알려져 있다.

한림대 의대 김용선 연구팀은 한국인이 이 유전자형을 물려받을 비율이 94.3%라는 연구결과를 2004년 ‘저널 오브 휴먼 제네틱스’ 온라인판에 실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보고된 광우병 사례는 세계적으로 모두 20건으로 영국이 10건, 아일랜드가 9건, 캐나다가 1건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영상 취재 : 동아닷컴 박태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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