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넘버2’ 프로젝트 가동중

  • 입력 2008년 5월 6일 03시 00분


일러스트=김수진 기자
일러스트=김수진 기자
“CEO 바뀌어도 연속성 유지 필요” 후계자 양성시스템 운영

남중수 KT 사장은 그가 마음에 둔 차기 최고경영자(CEO) 후보들의 명단과 평가를 적은 메모를 보관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사회가 급히 후임 CEO를 정해야 할 때 참고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남 사장은 “어떠한 상황에도 경영의 연속성을 지키는 것이 CEO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메모를 준비해 뒀다”고 말했다.

경영의 연속성을 위해 CEO 후계자 양성을 기업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인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 차세대 경영자를 발탁하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이제 우리 기업도 미국 GE의 잭 웰치와 같은 진정한 CEO를 만들어야 한다”며 “기업가 정신에 투철한 CEO를 양성하는 일이 나의 중요한 경영 목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동부그룹은 CE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혁신책임자(CIO) 등 단계별 차석자 가운데 2, 3명을 후계자로 양성하는 ‘CXO(C레벨을 통칭하는 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하나로텔레콤은 각 임원은 물론 부서장 단위까지 후임자를 미리 정해 놓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승계 프로그램(Succession Plan)을 두고 있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포스코와 KT도 체계적인 후임 CEO 양성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포스코는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GE와 같은 투명하고 공개적인 CEO 선출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하고, 차세대 경영자를 양성하기 위한 GE식 인재사관학교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안을 장기 과제로 검토하기로 했다.

KT는 사외이사 중심의 CEO 선출 프로그램을 안착시키면서 계열사 CEO 또는 KT 내 사업부문장을 CEO 후보군으로 올려놓고 지속적으로 평가할 계획이다.

두산그룹도 최근 GE 출신의 인사 담당자를 영입하고, CEO와 주요 임원의 후계자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CEO 후계자 양성을 목표로 아예 팀장 단위부터 관리하는 회사들도 나타나고 있다.

LG전자는 팀장급들을 기획, 판매, 재고관리 등 개별 상품의 전 과정을 담당하는 ‘소(小)사업부장’으로 일하도록 하는 ‘프로덕트 비즈니스 리더’ 제도를 지난해 도입했다. 소규모 사업을 총괄하게 하면서 ‘기업가 정신’을 스스로 느끼게 하자는 취지다.

○ 한국 기업문화 곧 변할 것

CEO 후계자 양성은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책임지는 해외 기업에선 이미 뿌리를 내렸다. GE 웰치 전 회장의 후임인 제프리 이멜트 현 회장은 취임 8년 전부터 CEO 후보군에 속해 철저한 평가와 훈련을 받았다.

스타벅스는 2000년 오린 스미스가 CEO로 선임되자마자 자신의 후임자로 짐 도널드를 지목해 2005년 성공적으로 CEO를 교체한 바 있다.

미국 가정용품 업체인 콜게이트 팜올리브는 입사 1년차 사원부터 CEO 재목감인지를 검토해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기업은 CEO의 후계자를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할 정도로 소극적인 것이 현실이다.

황인경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오너 중심의 경영이 일반화된 한국에선 CEO 후계자 양성에 관심이 적은 편”이라며 “하지만 서구식 기업문화 도입으로 경영의 연속성 측면에서 후계자 양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기업인의 후계자 양성 관련 발언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우리 기업에도 오너의 재산관리자가 아니라 기업가 정신을 갖춘 진정한 CEO가 필요하다. 진정한 CEO 양성이 나의 중요한 경영 목표 중 하나다.”
조정남 전 SK텔레콤 부회장“자신보다 유능한 부하를 양성하는 것이 리더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후배들에게 직접 좋은 결정을 내릴 기회를 줘야 한다.”
남중수 KT 사장“CEO 후계자 명단과 이들에 대한 평가를 정리해 놓고 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A G 래플리 P&G 회장(CEO)“회사의 장기적 성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다른 리더들을 키우는 일이다.”
랜들 토비아스 엘리릴리 전 CEO“CEO 후계자 승계 계획은 이전 CEO가 사임을 발표하는 순간이 아니라 신임 CEO가 선임되는 바로 그날부터 준비해야 한다.”
자료: 각 회사 및 LG경제연구원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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