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재정부와 다시 ‘환율 대립각’

  • 입력 2008년 5월 9일 02시 59분


이성태 한은 총재

새변수 떠오른 환율, 물가에 미치는 영향 원자재값 급등보다 더 커

韓銀, 금리 연 5%로 동결… 원-달러 환율은 하루새 23.5원 급등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8일 현재의 연 5%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9월 이후 기준금리를 9개월째 동결한 것.

최근의 물가불안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보다 심각하다고 한은이 판단한 것이다.

금리 인하를 기대했던 금융시장은 곧바로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24%포인트 오른 5.22%로 마감했다. 》

○ 올 경제성장률 4.5% 이하로 떨어질 것

이성태 한은 총재는 금통위 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해 들어 내수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고 있어 올해 경제성장률이 예상치인 4.7%에 못 미치는 4.5%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동결했지만 향후 경기와 물가를 봐가며 금리를 인하할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긴 셈이다.

이날 금통위 회의에서 금리동결을 결정한 것은 한동안 안정세를 보였던 원유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이달 들어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8일 이후 7거래일 만에 53.50원이나 올랐다. 또 7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는 장중 배럴당 123.8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 총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내비쳤다.

그는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안정세를 찾아도 소비자물가는 연말에나 목표범위 내로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3분기(7∼9월)에는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던 기존 전망을 바꾼 것이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2월 이후 한은의 관리 상한선(연 3.5%)을 웃돈 데 이어 4월에는 4%를 넘어섰다.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유동성도 한은으로서는 부담이 됐다. 4월 중 유동성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나 증가하며 5년여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최근 며칠 사이 유가와 환율이 예상치 이상으로 올랐다”며 “경기만 본다면 금리를 내려야겠지만 물가상승의 위험이 워낙 현저하다”고 말했다.

○ 환율 1% 오를 때 물가 0.08% 오른다

이 총재는 이날 “몇 개월 전에는 없었던 환율이라는 변수가 새롭게 추가됐다”며 “우리 경제를 보면 원자재 가격과 환율 중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당연히 환율의 영향이 더 크다”고도 말했다. 이에 맞춰 한은은 원-달러 환율과 유가가 1%씩 오르면 1년 동안 소비자물가는 각각 0.08%, 0.02% 오른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 같은 이 총재의 발언은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높은 원-달러 환율을 유도해온 기획재정부를 직접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정부-한은 간 환율 논쟁의 재점화가 예고되는 대목.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개장 초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은 이 총재의 이러한 발언에 반응한 듯 잠시 주춤하기도 했으나 이내 재반등해 전날보다 23.5원 상승(원화가치 하락)한 달러당 1049.6원으로 마감됐다.

○ 향후 금리인하 가능성은 열어놔

하지만 한은도 국내 경기 둔화를 우려하고 있어 향후 금리를 내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은은 이날 내놓은 ‘최근 국내외 경제동향’ 자료에서 “한국 경제는 수출이 높은 신장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소비, 투자 등 내수 부문이 낮은 증가세를 보여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 소비재판매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1∼3월)엔 전년 동기 대비 5.7%였지만 올해 1분기엔 3.8%로 떨어졌고 설비투자 증가율 역시 지난해 1분기 12.8%에서 올해 ―1.0%로 급락했다.

또 이 총재의 “금리 인하 결정은 경기상황뿐 아니라 시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번에 우리가 결정한 것은 5월은 (금리를 변경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금리 변경은 대체로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등의 발언을 금리 인하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경기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악화되고 있어 하반기(7∼12월)에는 한은이 금리를 내릴 것이란 예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견해”라고 말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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