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큰폭 인사…세대교체 - 조직개편 급물살

  • 입력 2008년 5월 15일 02시 57분


《14일 발표된 삼성 사장단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세대 교체’로 요약할 수 있다. 또 당초 예상보다는 인사 폭이 비교적 큰 편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삼성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과 최측근인 이학수(부회장) 삼성 전략기획실장이 지난달 22일 경영쇄신안 발표를 통해 물러나기로 한 데 이어 또 다른 핵심 최고경영자(CEO)인 윤종용 삼성전자 총괄 대표이사 부회장도 상임고문으로 위촉돼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윤종용-이중구등 고참 퇴진계기로 체제 정비

연말 예정된 인사 외환위기 이후 최대폭 될듯

“서열 존중한 인사” 평가… 변화속 안정 택해

윤 부회장은 1966년부터 40여 년간 삼성에 근무했다. 1997년 1월부터 12년 가까이 삼성전자의 총괄 대표이사를 맡아오면서 이 회장, 이 실장과 함께 그룹 경영의 삼각편대를 이뤄왔다.

그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후진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용퇴 의사를 밝혀왔지만 그룹에서 적극 만류해 왔다는 후문이다. 그러다 지난달 경영쇄신안이 발표되면서 용퇴 결심을 굳혔고 주변에서 더는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는 게 회사 측의 공식 설명이다.

이날 함께 자진 사퇴하기로 한 이중구 삼성테크윈 사장도 그룹 내 고참 CEO 가운데 한 명이었다. 1994년부터 삼성화재 삼성물산 삼성생명의 대표이사를 차례로 맡아 ‘미스터 CEO’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삼성그룹 내에 이들보다 원로인 CEO는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삼성을 대표하게 된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삼성 각 계열사 사장단의 세대 교체 및 조직 개편은 앞으로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당초 지난해 말 외환위기 이후 느슨해진 ‘10년 체제’를 정비하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조직 개편을 단행할 예정이었으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사태로 모든 일정이 연기된 바 있다.

삼성 관계자는 “10여 년간 성공가도를 달려오면서 조직이 곳곳에서 동맥경화에 걸렸다는 자체 평가가 지난해에 적지 않았다”며 “올해 연말 인사는 말 그대로 외환위기 이후 최대 폭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이번 인사가 연말 대폭 인사의 예고탄이라는 분석이 많다.

브레이크가 걸렸던 신(新)수종사업 발굴도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삼성은 지난해 말 임형규 종합기술원장을 신사업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으나 이번 인사에서 겸임을 해제하고 삼성전자 소속 신사업팀장으로 발령해 신성장동력 발굴에 전념토록 했다.

삼성은 다만 이번에는 일단 ‘변화 속의 안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올해가 절반가량 지나간 데다 9월부터 내년 경영계획 수립에 착수해야 하는 일정을 감안한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당초 예상과 달리 윤 부회장이 물러나면서 연쇄인사로 인해 인사 폭이 커졌지만 대체로 서열에 따른 무난한 인사를 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윤우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포스트 윤종용’을 맡는 형식이 됐지만 일각에서는 과도기적 체제에 머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단 순환인사를 하되 윤 부회장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인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포스트 윤종용’ 경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삼성화재와 삼성증권도 각각 이미 퇴임을 예고한 황태선 전 사장과 배호원 전 사장의 공백을 메우는 후임 인사였다. 삼성테크윈도 이중구 사장이 용퇴를 결심한 데 따른 후속 인사 성격이 강하다.

삼성의 한 임원은 “이번 인사는 경영쇄신안 발표 이후 흐트러졌던 전열을 인사 측면에서 재정비한 성격이 강하다”며 “하반기에 종합적인 사업 재편의 밑그림을 그린 후 그룹 창립 71주년이 되는 내년부터 다시 본격적인 도약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 삼성전자 新舊 총괄대표이사

‘새선장’ 이윤우- 선굵은 리더십으로 ‘자율의 삼성’ 변화 바람 기대

‘떠나는’ 윤종용- CEO 12년간 매출 1000억달러 돌파… ‘세계 빅3’로

삼성전자의 새 총괄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윤우 부회장은 ‘관리의 삼성’에서 ‘자율의 삼성’으로 변화시킬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이 부회장의 리더십은 ‘삼성스럽지’ 않을 정도로 자율적인 편”이라며 “선이 굵은 스타일이어서 회사 안팎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1968년 12월 그룹 공채를 통해 삼성전관으로 입사했고 1977년 6월부터 삼성전자에서 일하면서 ‘반도체 성공 신화’를 일군 대표적 경영자이기도 하다.

그는 반도체 기흥공장장, 기흥연구소장, 메모리본부장, 반도체총괄사장 등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20년 가까이 반도체사업에 매진한 반도체 전문가다. 특히 메모리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 반도체의 약점인 중앙처리장치(CPU) 등 비메모리 분야에도 적극적 관심을 보여 왔다.

그는 평소 반도체산업의 침체 가능성에 대해 “몇 십 년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 부회장은 2004년 1월부터 대외협력담당 업무를 맡으면서 삼성종합기술원장과 기술총괄도 차례로 겸직해 기술개발 전략 전반을 관장하며 글로벌 거래처와도 활발한 교류를 해왔다.

외국계 기업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이 부회장은 해외 유학을 하지 않은 국내파이지만 해외 유명 CEO들이 인정할 정도로 인품이 훌륭하다”며 “비즈니스로 만난 외국 파트너들이 (그를 만나러) 일부러 한국에 찾아오곤 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인사에서 상임고문으로 위촉되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윤종용 부회장은 1997년부터 12년 가까이 삼성전자의 CEO로 근무하면서 이 회사를 세계적 일류기업의 하나로 성장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가 이끌어온 삼성전자는 지난해 해외법인 등을 포함한 연결기준으로 매출 1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지멘스, HP에 이어 세계 전자업체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윤 부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창립 40주년이 되는 2009년에는 매출과 이익에서 세계 1위의 초일류 전자회사가 되도록 창조적인 혁신을 가속화하자”고 강조했다.

이제 그는 ‘삼성전자의 세계 1위 등극’을 앞장서 이끄는 대신 뒤에서 밀며 응원하는 자리로 스스로 물러앉았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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