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제 주춧돌은 ‘장수기업’

  • 입력 2008년 5월 15일 02시 57분


200년 넘은 기업 3146개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무장

90년대 불황 탈출 큰 역할

578년 설립된 일본의 건축기업 곤고구미(金剛組)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2006년 자금난으로 다른 건설사에 인수됐지만 기업의 이름과 종업원, 사업부문은 그대로 유지하며 1430년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회사가 1000년을 넘기며 존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는 투철한 장인정신을 꼽을 수 있다. 곤고구미는 땅에 묻히는 기초공사나 눈에 안 띄는 천장에 더 비싼 자재를 썼다.

또 593년에 세운 일본 최고(最古)의 사찰 시텐노지(四天王寺) 등을 비롯해 이 회사가 세운 모든 건축물의 보수기록부도 대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14일 펴낸 ‘일본 기업의 장수 요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일본의 장수기업들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더 충실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존속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창업한 지 200년이 넘은 기업은 5586개(41개국)로 이 중 절반이 넘는 3146개가 일본에 몰려 있다. 이어 독일(837개) 네덜란드(222개) 등의 순.

일본에는 1000년 이상 기업이 7개, 500년 이상 기업 32개, 100년 이상 기업은 5만여 개가 있다. 한국에서는 110년이 넘은 두산(1896년)과 동화약품공업(1897년) 정도가 오래된 기업으로 꼽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철저한 위험관리와 고객에 대한 신용은 일본 장수기업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1689년 주조(酒造)회사로 창업한 스즈키(鈴木)는 호황기에도 생산량 증가율을 전년대비 5%로 유지했다. 잘 팔린다고 사업을 크게 늘리면 불량품이 나온다는 이유에서였다.

자기 본업(本業)을 중시하는 일본 특유의 가치관과 외부 침략을 거의 받지 않은 일본 역사 등도 장수의 주요 요인.

이 밖에 ‘상인 중의 상인’으로 꼽히는 오사카(大阪) 상인들이 돈을 남기는 것은 하, 가게를 남기는 것은 중, 사람을 남기는 것은 상이라 여긴 점을 들며 이들이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을 한 것도 장수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장수기업은 일본 경제의 주춧돌이기도 했다. 액정용 도금기판 분야에서 세계 시장 90%를 점유하는 스미토모(住友)사를 비롯해 다수의 오래된 일본 중소기업들이 세계 1등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일본 경제가 1980, 90년대 엔고(高)와 장기불황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데도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장수기업의 역할이 컸다”고 분석했다.

또 보고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최근 중소기업 경영자의 고령화 등에 따라 가업승계의 단절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상속제도를 보완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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