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무마용 시간끌기” “고시내용 수정 못해”

  • 입력 2008년 5월 15일 02시 58분


14일 국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에 출석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왼쪽)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을 비롯한 관계부처 장관도 답변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14일 국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에 출석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왼쪽)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을 비롯한 관계부처 장관도 답변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1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이틀째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도 전날에 이어 사실상 ‘쇠고기 청문회’로 진행됐다. 15일 새벽까지 이어진 이날 청문회는 당초 농림수산식품부의 고시 연기 여부로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청문회 초반에 정운천 장관이 일찌감치 고시를 연기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재협상 여부와 협상 책임론이 주로 거론됐다. 농식품부의 고시 연기에 대해 한나라당은 충분한 재검토를 위해 10일 이상의 긴 연기를 주장했고, 야당은 고시 수정이나 재협상이 전제되지 않은 연기는 국민 기만이라며 반발했다.》

■‘장관 고시’ 연기-재협상 공방

野 “미국에 속은 것… 재협상 가능”

정부 “수입유예 의견 교환… 어려워”

통합민주당 등 야당은 정부의 수입위생조건 장관 고시 연기 방침을 ‘여론 무마용 눈속임’으로 규정하고, 즉각적인 재협상을 촉구했다. 한나라당도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지적한 뒤 국민적 의혹을 가라앉히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정부가 고시를 열흘가량 연기하겠다는 것은 결국 임시국회가 끝날 때까지 시간 끌기를 한 다음에 촛불집회가 사그라지면 밀어붙이겠다는 뜻 아니냐”며 “재협상과 고시 수정 없는 유예는 ‘눈 가리고 아웅’이자 국민 기망”이라고 주장했다.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정부가 미국에 속았으므로 재협상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대표단이 강화된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를 하겠다는 미국 말을 믿고 협상을 타결했다”며 “이게 바로 기망행위이고, 국제조약상으로 재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듯 합의안의 부분적인 수정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총리 담화에 대해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수용한다고 밝힌 만큼 검역 주권 포기 논란을 불러온 조항을 삭제하고 고시를 해도 되지 않느냐”고 질의했다. 그러나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기본적으로 고시에는 합의 내용이 정확히 반영돼야 한다. 일방적으로 삭제하는 것은 상대방의 반발을 초래할 것이 명확하다”며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협상 결과보다는 정부의 협상 이후 대응이 미숙했음을 지적했다. 박 의원은 또 정부가 자율규제협정을 통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6개월이나 1년 정도 유예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한미 간 비공식적으로 의견 교환을 해본 적이 있으나 현재 판단으로는 어렵다”고 답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 주요 쟁점
쟁점정부한나라당통합민주당
장관 고시 “7∼10일 연기”“일정 기간 연기”“재협상 없는 고시 연기는 국민 기만”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한미 합의에 따라 장관 고시 공포 이후 수입”“6개월에서 1년 유예기간 이후 수입”(박진 의원)“재협상 통해 수입 전면 제한”
쇠고기 협상
타결 배경
“참여정부 때부터 추진돼 온 사안으로 정치적 목적 없이 농림부가 결정”“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선물”
쇠고기 협상
타결과 FTA
“별개 사안”“쇠고기 수입 재개는 한미 FTA의 선결조건”
쇠고기
재협상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이 바뀌지 않는 이상 재협상 불가”“당장 재협상 착수해야” “총리 담화와 미 정부의 이해 표시로 재협상 사유 발생”

■김성이-정운천 장관 ‘뭇매’

“소관 장관이…” “사퇴 공감않나”

의원들 여야 구분없이 맹공격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소 복지 장관?

‘쇠고기 농담’으로 홍역을 치렀던 김성이 장관이 14일 국회 청문회에서 의원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은 “장관의 인식이 너무 기가 차다. …국민의 보건과 복지를 다루는 장관이지, 소의 복지를 다루는 장관이 아니지 않으냐. 왜 소를 걱정하느냐”고 질타했다.

김 장관은 13일 기자들에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책임이 농수산식품부가 아닌 외교통상부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30개월도 안 되는 (어린) 소를 대부분 먹는 줄 몰랐다. 인간이 너무 잔인한 것 아니냐”는 발언을 했다. 쇠고기 문제로 심각한 사회불안을 감안할 때 안이한 자세를 가졌다는 비판이 일었다.

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김 장관이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려고 하자 “잘했어요. 누가 뭐라고 그러나요. 그렇게 소신 있게 하시라는 겁니다”라며 면박을 줬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여당 의원들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았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일부에서 정 장관이 사퇴를 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말하자 정 장관은 “어떤 상황에서도 소임을 다하겠다”고 대답했고, 남 의원은 다시 “사퇴 필요성에는 공감하지 않느냐”며 재차 압박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피해를 보는 농어민에 대한 대책을 정 장관이 쉽게 설명하지 못하자 여러 차례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몰아붙였다. 특히 정 장관이 “세부적인 대책은 계획 중”이라고 답변하자 “국회에 비준동의를 요청하기 전에 확고한 대책을 마련해 농민을 설득하고 안심을 시켰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또 정 장관은 이날 답변 과정에서 ‘돈 버는 농업, 살맛 나는 농어촌’ 등 내부 슬로건 같은 똑같은 답변을 많이 해 의원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투자자 소송 논쟁

野 “수입 중단때 소송 사태 우려”

정부 “소송대상 안돼… 오해일뿐”

14일 계속된 국회 청문회에서도 “정부의 대미 쇠고기 협상이 충실하지 못했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정부에 책임을 묻고 대응책을 내놓으라는 지적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민주당 서갑원 의원은 미 축산협회 홈페이지에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올 2월 28일부터 한국 정부의 쇠고기 전면 수입 재개 방침이 실렸다고 주장했다. 홈페이지에는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미 정부와 차이를 좁히고 싶어 한다. 한국은 월령 범위를 확대할 것으로 예정돼 있다”는 글이 아직 남아 있다. 서 의원은 “그 시점은 이 단체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직후였다”며 “협상 시작 전부터 정부가 ‘개방 방침’을 정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민주당 김종률 윤호중 의원은 “미국이 4월 한미 협상에서 ‘앞으로 공표한다’고 약속한 동물성사료 금지 조치의 내용이 무엇이 될지 확인하지 않은 것을 시인하라”고 압박했다.

민동석 농식품부 통상정책관은 “최선을 다한 협상이었다”며 한동안 즉답을 피하다가 “구체적인 내용은 협상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민주당 최성 의원은 “한미 FTA는 투자자 소송을 허용했다”며 “광우병 발생 시 한국이 수입을 중단했을 때 한국에 진출한 미국 쇠고기 수입업체가 정부에 소송을 걸면 무방비가 된다”고 지적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한국에 진출한 미국 업체만 수입이 금지되고, 한국 업체는 허용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차별이 없는 만큼 소송 대상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김 본부장은 “이처럼 오해나 잘못된 이해가 걱정을 키운다”며 아쉬워했다.

최 의원은 “미국에선 위험한 부위라며 학교 급식 금지 대상인 고기가 한국에는 안정물질로 수입된다”며 새로운 의문을 제기했다. 최 의원이 지목한 쇠고기 부위는 경추 횡돌기, 흉추 극돌기 등이다. 정 장관은 “그런 주장을 펴는 이들이 있지만, 과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주장이 아니다”며 “어떻게 위험물질을 수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