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글로벌 기업 간 전략적 제휴나 국내 대기업과 외국 기업간 합작 소식은 많이 들었지만 국내 대기업 간 '자발적 합치기'는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굳이 전례를 찾는다면 과거 군사정권 때나 외환위기 이후의 사실상 강제적인 합병 정도가 있겠지요.
PI필름은 내열성과 내구성이 좋아 휴대전화, 평판디스플레이 등의 핵심 부품으로 사용되고,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유망 사업입니다. 하지만 몇 몇 일본 업체들이 이미 세계 시장을 과점(寡占)하는 상황에서 코오롱과 SKC가 2005~2006년 뒤늦게 뛰어들어 이들을 독자적으로 상대하긴 애초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배영호 코오롱 사장과 박장석 SKC 사장은 지난해 말 회사를 합치기로 하고 두 기업 총수들의 흔쾌한 동의를 얻어 지난해 세부 논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멀쩡한 대기업들이 50%씩 똑 같은 지분을 갖고 각자의 기존 사업체를 서로 합친다는 게 말이 쉽지만 간단한 일은 아니지요.
가장 큰 문제는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표이사 사장을 어느 쪽이 맡느냐였다고 합니다.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두 회사는 어떻게 결정했을까요. 답은 의외로 단순하고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배 사장과 박 사장이 만나 학창시절이나 했을 법한 '사다리타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 단순한 '절차'를 통해 코오롱 측이 초대 대표이사 사장을 맡게 됐고, SKC 측에선 아무 이의제기도 없었다고 합니다. 상황이 복잡하고 결론내기 어려울 때는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네요.
두 회사 관계자들은 지금 "역사에 남을 만한 대기업 협업 모델을 한번 만들어보자"며 의욕에 차있습니다. 그 동안 국내외에서 제살 깎아먹기 식 출혈 경쟁을 해 온 우리 기업들에게 '사다리 타기'로 탄생한 두 회사의 합작법인이 새로운 협력 모델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조용우기자(산업부)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