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진출 외국기업 ‘분쟁의 늪’

  • 입력 2008년 5월 16일 03시 13분


‘안 할 수도 없고 하자니 골치 아프고….’

중국에 진출한 상당수 외국 기업이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 내 합작사가 계약을 위반하거나 계약 이행을 지연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지적재산권 침해로 인한 피해도 크다. 이런 분쟁을 해결하는 ‘모범답안’은 소송이지만 이들 기업은 선뜻 중국 내에서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중국의 법체계가 다른 데다 국수주의적 요소도 강하게 남아 있어 소송이 오히려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용두사미?=지난달 중국 법원은 소니BMG와 워너뮤직, 비벤디 유니버설뮤직이 불법 음악파일 다운로드를 문제 삼아 중국의 인터넷포털 바이두와 소후닷컴을 상대로 낸 소송을 받아들여 정식 재판을 열기로 했다.

AP통신을 비롯한 외신들은 “2억 명이 넘는 중국 누리꾼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불법 다운로드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문제는 소송 원고인 기업들이 기대하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점이다. 판결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중국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판결이 나온 전례도 많기 때문이다.

올해 초 루이비통이 한 중국 호텔의 ‘짝퉁’ 제품 판매를 문제 삼아 낸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배상금은 10만 위안에 그쳤다. 이는 루이비통이 요구한 금액의 20%밖에 되지 않는다.

2006년 샤넬과 프라다, 버버리, 구찌 등이 베이징의 유명 쇼핑몰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받아낸 배상금 역시 요구 금액(250만 위안)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2만 위안이었다.

▽“조용히 끝내시죠”=정식 소송에 가기도 전에 합의하기를 종용하는 경우도 많다.

12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중국 당국 및 기업들이 분쟁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 산하기관인 중국국제경제무역조정위원회(CIETAC)가 처리한 사건은 1985년만 해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1118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 중 40%(429건)는 외국 기업이 관련돼 있는 사건이다.

합의는 소송비용이 적게 들어가고 분쟁을 효율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공개 재판 과정에서 기업 내부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을 피해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는 중국 내에서 정식 재판으로 갈 경우 더욱 불리해질 수 있는 만큼 조정을 통한 합의가 더 낫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외국 기업들은 조정관들이 중국 기업에 치우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데 우려하고 있다. 2005년 펩시와 중국의 음료수병 제조업체 간 분쟁에서 펩시 측 손을 들어줬던 CIETAC의 조정관이 이후 중국 당국에 구금됐던 선례는 이런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몇 년 전 CIETAC에서 외국인 조정관으로 활동했던 뉴욕대 제롬 코헨 교수는 “내가 보기에 중국 측이 계약을 위반한 것이 명백한 사건에 대해 다른 2명의 중국인 조정관이 자국 기업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다만 기업들은 점차 중국의 분쟁해결 관행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알코아의 존 태클런버그 아시아지역 담당 이사는 “중국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때때로 효과를 본다”고 말했다. 텍스트론의 앤드루 스패콘 이사는 “상황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많은 시간과 경험 축적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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