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 껐지만 기회비용 감안땐 본전도 못 건진셈
이랜드그룹이 홈에버를 매각하기로 결정해 대형마트 진출 2년 만에 손을 떼게 됐다. 무려 23번의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려온 이랜드, 이번 매각에 따른 득실은 어떨까.
▶본보 15일자 B2면 참조
이랜드가 이번 매각으로 손에 쥐게 되는 금액은 4000억 원이다. 이랜드는 M&A 때마다 대부분의 인수자금을 빚을 내서 조달했다.
2006년 한국까르푸를 인수할 당시에도 인수자금 1조7000억 원 가운데 이랜드가 직접 부담한 돈은 3000억 원이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까지 1000억 원을 이자비용으로 내야 했다. 매장 리뉴얼과 노조와의 갈등으로 인한 영업 손실까지 겹치면서 그룹 전체 재무구조는 악화됐다.
이랜드는 홈에버 경영정상화를 염두에 두고 영국계 사모투자펀드(PEF)인 퍼미라로부터 4000억 원의 외자를 끌어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맺기도 했다.
여기다 이랜드 중국법인인 이랜드상하이패션을 홍콩증시에 상장하는 방법으로 3000억 원의 자금을 모아 홈에버 정상화에 투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랜드상하이패션의 기업가치 하락으로 실제 조달 가능한 돈이 1500억 원 수준으로 줄어들자 자금조달 계획이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결국 홈에버 매각으로 급선회하게 됐다.
이번 매각이 기업 실사(實査)에서 본 계약 체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점도 이랜드의 급박한 자금사정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증권가와 유통업계에서는 이랜드가 이번 매각으로 투자 원금을 모두 건지지는 못했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기 이전에 서둘러 매각한 것이 바람직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랜드는 까르푸 인수 때 빌린 차입금 때문에 적지 않은 금융부담을 떠안았고 노조와의 비정규직 갈등으로 영업중단 사태를 겪으며 실적 면에서도 큰 손실을 봤다. 하지만 이번 매각으로 대부분의 빚을 갚을 수 있게 됐다.
또 2년 전 까르푸 인수 때 투자했던 3000억 원도 회수하게 됐지만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차익을 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이랜드그룹은 1980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앞 작은 옷가게로 출발했다. 젊은층을 대상으로 비싸지도, 그렇다고 저가도 아닌 캐주얼을 만든 이랜드는 이후 아동복을 비롯해 여성 의류, 시계, 보석, 유통, 콘도사업 등에 뛰어들었다.
1997년 의류업계의 성장둔화와 외환위기 등으로 부도 직전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외자유치 등을 통해 이를 극복했다. 2001년에는 전 브랜드에서 흑자를 달성하는 등 중견그룹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이랜드가 M&A의 강자로 부상한 것은 2003년. 여성 의류회사 데코를 비롯해 중소 의류 브랜드 6개, 당시 법정관리 중이던 뉴코아백화점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이랜드가 이처럼 거침없이 유력 기업을 집어삼킬 수 있는 것은 첨단금융기법을 동원해 외부 자금을 최대한 활용한 덕분이다.
하지만 이번 홈에버 문제에서 보여줬듯이 그룹 규모에 비해 영세한 기업시스템과 투명성 부족은 문제로 꼽힌다. 계열사 가운데 상장회사는 2개이고 이마저도 인수한 기업이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