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이라는 이름의 중독

  • 입력 2008년 5월 17일 02시 58분


멱살잡이… 거액 인센티브… 증권사 영업맨, 그들의 천당과 지옥

“남자 고객 한 사람이 객장에서 ‘내 돈 물어내라’며 대성통곡을 할 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1억5000만 원을 맡긴 고객 돈을 4년 만에 50억 원으로 불렸을 때는 신이 나더군요.”

증권사 ‘영업맨’인 대우증권 황봉연(37·영업경력 8년) 광교지점 주식영업팀장은 영업을 하면서 겪은 애환을 이렇게 소개했다. 증권사 영업맨은 고객에게 주식 종목을 추천하고, 매매 시기 등에 대해 조언을 하는 사람들. 주식투자자 가운데 인터넷이 아니라 전화나 객장을 통해 거래하는 20% 정도가 이들의 고객이다.

이들은 높은 실적을 내면 거액의 인센티브를 챙기지만 자칫 실수하면 주머니를 털어 고객의 손실 금액을 메워주는 등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최근 한 증권사 영업맨이 한 해 인센티브로 20억 원을 받아 증권가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각 증권사 베스트 영업맨으로 꼽히는 우리투자증권 차성렬(40·영업경력 11년) 대치역지점 부장, 한국투자증권 이노정(36·10년) 영업부 차장, 황 팀장 등에게서 ‘영업맨의 세계’를 들어봤다.

○ “수익 잘 내고 발품 많이 팔아야 좋은 영업맨”

증권사 영업맨으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수익을 많이 내야 한다.

차 부장은 5억 원을 4년여 만에 100억 원으로 불려본 경험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 차장도 10억 원을 1년 만에 35억 원으로 불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크게 성공한 것은 극히 드물며 모든 고객에게 이렇게 높은 수익률을 내도록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좋은 종목을 고르기 위해 기업분석 보고서를 독파할 뿐 아니라 수시로 ‘주식투자 고수’들에게 투자기법을 배운다. 투자대상 기업을 방문하기도 한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고객을 확보하는 것도 영업맨의 필요조건이다. “한 피부과 의사가 주식 투자를 많이 한다는 얘기를 듣고 멀쩡한데도 ‘부스럼이 있다’며 8개월간 병원을 다닌 끝에 고객으로 만들었어요.”(이 차장)

고객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증시가 폭락하는 날에도 고객을 달래기 위해 달려간다. 이 차장은 “신혼여행 가서 제일 먼저 전화한 사람이 고객이었다”고 말했다.

세 사람이 관리하는 자산은 각각 300억 원 안팎이다.

○ 멱살잡이 당하고, 월급으로 메워주기 등 고역 많아

황 팀장의 동료 영업맨은 두목의 애인이 투자손실을 봤다는 이유로 조직폭력배들이 객장에 찾아와 도끼로 책상을 내리찍으며 위협하는 바람에 혼비백산하기도 했다. 특정 종목을 사 달라고 했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주문 낸 적 없다”고 우기는 고객도 없지 않다.

“투자한 기업에 악재라도 생기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재작년에 현대자동차가 검찰 수사를 받는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하늘이 노랬죠. 365일 중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죠.”(이 차장)

차 부장은 “대박을 꿈꾸고 영업맨을 지원하지만 90%는 3년 이내에 손들고 나간다”고 설명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이 영업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큰 수익을 냈을 때의 기쁨에 ‘중독’됐기 때문이다. “주가가 쭉쭉 올라 큰 수익이 났을 때 전율을 느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이 차장)

○ “여윳돈으로 투자해야 돈 벌어”

이들은 수익을 내는 고객들은 공통점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여윳돈으로 우량 종목을 사 장기 보유한다는 것.

“대출을 받아서 투자하면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기초 체력이 튼튼하고 저평가된 기업을 골라 느긋하게 갖고 가면 언젠가는 벌게 됩니다.”(차 부장)

1인당 보유 종목은 10종목이 넘지 않도록 권한다. 종목이 너무 많으면 자기가 가진 종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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