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투자 환경… 돈이 멀리 보기 시작했다

  • 입력 2008년 5월 19일 03시 01분


대기업들 “노사 안정+(비즈니스 프렌들리×지자체 지원)=?”

극심한 부진을 보였던 한국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살아나는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제 유가 및 곡물값 급등, 미국발(發) 국제금융 및 실물경제 불안 등 대외 악재가 여전히 만만찮지만 앞으로 투자 확대가 국내 경기회복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기업친화적 정책 추진을 분명히 하는 새 정부 출범 후 기업인들의 투자심리가 회복되고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유치 노력도 뒷받침돼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한다.

○잇따르는 대기업 투자 발표

GS칼텍스는 다음 달부터 2010년까지 2조9400억 원을 투자해 전남 여수에 하루 생산량 11만3000배럴 규모의 제3중질유분해탈황시설(HOU)을 건설하겠다고 16일 공시했다.

특히 이 회사는 올해 1분기(1∼3월) 국제유가 급등과 환차손(換差損) 때문에 232억 원의 적자를 본 상황에서 창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이며 국내 정유업계 단일 프로젝트로도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본보 17일자 A1면 참조 ▶ GS칼텍스 2조9400억원 투자…여수에 대규모 정유시설 건설

산업계에서는 GS칼텍스의 이번 투자 결정을 고효율 정유시설을 늘림으로써 고유가 상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경영진의 의지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대기업들도 ‘조 단위’의 투자계획을 속속 내놓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15일 경북 구미 공장에 모니터용 패널 등을 생산하는 6세대 액정표시장치(LCD) 라인을 증설하는 데 1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SK에너지도 지난달 말 인천에 1조5200억 원을 들여 고도화설비를 짓기로 결정했다.

또 현대중공업은 7일 전북 군산에서 1조2000억 원이 투자될 군산조선소 기공식을 열었고, 삼성전자도 일본 소니와 함께 1조7957억 원을 투자해 충남 탕정에 LCD 8-2라인을 증설할 계획이라고 지난달 25일 밝혔다.

충남 당진에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 중인 현대제철은 지난달 28일 투자액을 당초 5조2400억 원에서 5조8400억 원으로 6000억 원 증액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달 들어 삼성SDI와 CJ제일제당, LG텔레콤 등도 1000억 원대의 투자계획을 새로 내놓았다.

이 밖에 LS전선은 지난달 30일 강원 동해시 송정산업단지에서 총 1300억 원이 투자될 첨단 해저 전력케이블 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민관의 분위기 변화가 원인

그동안 막대한 현금을 회사 안에 쌓아둔 채 투자를 망설이던 대기업들이 최근 본격적으로 투자를 늘리는 것은 정권교체에 따른 사회경제적 분위기 변화 및 기업가 정신의 회복이 결정적이라고 재계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상당수 기업의 투자 확대 움직임은 새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에 의한 투자기회 확대, 법인세 인하와 산업용지 공급 확대 등 기업 수익성 개선 조짐, 신사업 진출을 통해 성장활력을 모색하려는 기업의 노력 등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GS칼텍스 관계자도 “GS칼텍스 지분구조는 GS와 미국 셰브론사(社)가 50 대 50이기 때문에 투자를 하려면 양대 주주의 공동 결정이 필요하다”며 “셰브론사가 투자 결정을 내리기까지 정부의 정책 기조와 투자 활성화 정책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의 투자유치 노력도 기업의 투자를 확대하는 데 긍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LS전선의 해저케이블 공장은 강원도와 동해시,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는 전북도와 군산시 등의 투자유치 노력이 맞물린 ‘지자체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행정’ 사례로 꼽힌다.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힌 기업이 대부분 노사화합 선언을 하는 등 노사관계가 안정된 곳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GS칼텍스는 2004년 노사 갈등을 겪다가 2005년 12월 노사화합 선언 뒤 무분규 사업장으로 변신한 기업이며, 현대중공업도 올해까지 13년 연속 임금·단체협상 무분규를 달성해 노사화합의 모델이 되고 있다. SK에너지 인천콤플렉스(옛 SK인천정유) 역시 2006년 3월 SK그룹에 인수된 뒤 무분규 선언을 한 데 이어 올해 2월 노사화합 선언을 했다.

○본격적 확대로 이어질까?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이 같은 투자 움직임이 다른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 등 국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이 더 이어질 가능성은 높고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각종 악재가 쉽게 걷힐지는 불투명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설비투자 증가율은 1, 2월에 마이너스였고 3월에도 0.4% 증가에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 통계적으로도 투자 분야 추세가 반전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새 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힌 기업의 실제 투자가 본격적으로 집행되는 시점은 대부분 5, 6월이나 하반기(7∼12월)여서 1분기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이와 함께 삼성그룹이 올해 연간 투자액 기준으로 사상 최대인 27조8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하는 등 30대 그룹의 올해 투자계획이 지난해보다 26% 증가한 94조9311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경련 조사 등도 향후 투자회복에 대한 기대심리를 높이고 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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