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를 넘기려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돈을 풀었다. 1680억 달러에 이르는 세금 환급도 했다. 그 덕분에 금융시장 위기는 넘겼지만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고 있다. 1970년대 사태(스태그플레이션)가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토머스 헤이니그 미국 캔자스연방준비은행 총재) 미국 금융위기가 최악의 상황을 지나자 이번에는 미국발 인플레이션 우려가 본격화하고 있다. 과잉 유동성과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 때문이다.》
○ 글로벌 금융시장 빠른 회복세
미국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은 FRB가 올해 3월 세계적 투자은행(IB)인 베어스턴스의 ‘구제금융’에 나서며 빠르게 진정돼 왔다.
16일까지 미국 다우존스산업지수와 영국 FTSE100지수는 3월의 연중 최저치에 비해 각각 10.62%, 16.44% 올랐다.
신용경색도 조금씩 풀리고 있다.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커지면서 우량채권(국채 10년)과 투기등급채권(BB―)의 금리 차는 2007년 1월 약 3%포인트 수준에서 올해 3월 6.59%포인트까지 벌어졌지만 이달 19일엔 6.16%포인트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글로벌 투자자금이 신흥시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졌다.
이윤학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달러가치 및 미국 금융시장 안정→안전자산 선호 약화→신흥시장 투자 재개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투자가는 4월까지 약 13조 원 이상을 순매도(매도금액―매입금액)했지만 이달 들어 16일까지 약 2300억 원을 순매입했다.
○ 본격화하는 인플레이션 우려
미국 정부의 조치는 유동성 수혈로 일단 생명을 연장시킨 응급조치에 불과하다. 위기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문제의 금융산업을 대수술해야 하고, 풀린 돈이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다시 빨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금리를 올려 풀린 돈을 회수할 경우 경기가 침체되고 이에 따라 해당기업의 경영정상화도 힘들어진다는 것. 정책 운용의 딜레마다.
실제 미국을 비롯해 영국 러시아 중국 인도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높은 인플레이션에 당면하자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최대 위협”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CNN머니는 최근 “FRB가 올해 말 혹은 대선 직전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악셀 베버 독일 중앙은행 총재 겸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도 16일 “유로 금리인상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다 FRB의 금리인하 종결로 인한 달러화 강세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하고 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달러 강세가 되면 국제유가는 실물에 대한 대체투자가 줄어 약세로 돌아서고 인플레이션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러한 전망이 빗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유전 개발에 투자하지 않아 공급이 신흥국의 수요 증가를 못 따라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미국 실물경기, 주택경기 회복이 관건
미국의 실물 지표 역시 완전히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의 1분기(1∼3월)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0.6% 성장한 것으로 나와 당초 예상했던 ‘마이너스 성장’을 웃돌았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1분기 GDP는 재고 증가 등 일시적 요인으로 좋게 나왔을 뿐 2분기는 이에 못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월간 고용지수는 4월까지 4개월째 줄고 있으며 주택가격 하락과 금융회사의 대출 회수 등으로 소비는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진원인 주택경기가 여전히 최악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3월 신축주택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3.3% 떨어지는 등 여전히 하락세를 보였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영국 주택시장의 급락, 미국 신용카드 부실 등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주변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물, 금융, 거시지표 모두가 해결이 만만찮은 도전들로 아직은 국제 경제여건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점치기 힘든 상황이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