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같은 원유…“연내 150달러 갈수도”

  • 입력 2008년 5월 22일 19시 54분


휘발유보다 비싼 경유세계적으로 경유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경유가격이 휘발유 가격보다 비싸지는 역전현상이 본격화 하고 있다. 2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보다 L당 20원 비싼 경유 가격이 붙어 있다. 변영욱 기자
휘발유보다 비싼 경유
세계적으로 경유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경유가격이 휘발유 가격보다 비싸지는 역전현상이 본격화 하고 있다. 2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보다 L당 20원 비싼 경유 가격이 붙어 있다. 변영욱 기자
"어렵네요. 솔직히 말해 뾰족한 대책이 없습니다."

유가 급등으로 국내외 증시가 동반 하락한 22일 오후, 기획재정부 고위 당국자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정책 기조엔 큰 변화가 없다"면서도 지금이 위기상황이란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고유가라는 거대한 해일이 한국경제를 덮치고 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4%대를 넘어 더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가 하면 수입품 가격이 크게 올라 교역조건이 사상 최악인 상황이다.

그렇다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가뜩이나 부진한 경기가 더 나빠질 게 뻔하고, 경기를 살리려 금리를 내리면 물가가 뛴다. 딜레마다.

●복합적 요인이 유가 자극

지난 달 말 미국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이 113달러를 넘어설 때만 해도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투기자금이 원유시장에 유입돼 유가가 단기 급등했다고 봤다.

일시적 요인에 따른 상승인 만큼 투기세력이 빠져나가면 유가도 다시 안정을 찾을 것이란 낙관론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투기세력은 유가 급등의 일부 요인일 뿐이란 분석이 대세다.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같은 신흥 경제권에서 원유를 많이 소비하는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의 원유생산능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유가 상승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 이런 수급(收給)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고유가 체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들어 미국 석유 전문투자회사인 BP캐피털의 분 피켄스 회장은 "올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물가상승 및 경상수지 적자 우려

유가 급등은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가격 상승→국내 물가 상승 및 경상수지 적자 폭 확대→내수 위축, 경기 둔화→기업 수익성 하락'이라는 악순환 고리의 출발점이 된다.

이 중 물가는 유가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경제지표. 원유 가격 상승은 시차를 두고 천천히 국내 최종소비재 물가로 전이되는 만큼 5월 이후 물가가 4월보다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

재정부도 4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44개월 만에 처음으로 4%선을 넘어선 뒤 물가가 더 오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실제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난 직후인 74년의 물가상승률은 30%에 육박했다.

경상수지 적자는 올 3월까지 벌써 51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배 수준에 이르렀다. 원유도입 단가가 급등하면서 상품수지에서도 적자를 보면 수출은 더 이상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못 된다.

삼성증권은 원유도입단가가 배럴당 평균 150달러에 이르면 경상수지 적자가 650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수입 단가가 크게 오르면서 상품 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 수를 나타내는 '교역조건'도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교역조건 동향' 자료에 따르면 교역조건 지수는 지난해 말 118.0에서 올해 1분기(1~3월)엔 108.3으로 떨어졌다. 작년 말에는 총 수출대금으로 상품 118개를 수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108개밖에 수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장률에 집착 말라'

경제 전문가들은 국제 유가가 당분간 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성장보다 물가안정에 정책의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가가 10% 오르면 물가가 0.2% 오르고 성장률은 0.1~0.2%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게 통설. 이처럼 유가 상승으로 물가가 더 큰 충격을 받고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직접적인 만큼 물가를 '발등에 떨어진 불'로 보고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성장과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는 없다"며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불안요인이 되고 있는 물가관리에 우선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수용기자 legman@donga.com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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