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高)유가 충격에 세계 증시는 일제히 ‘패닉(공황)’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유가 급등은 증시에 치명적인 악재다. 유가 상승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면 각국 정부는 금리 인상 등을 통해 돈을 시중에서 걷어 들이는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다.
유가 상승은 주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기업 실적에도 악영향을 준다.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익이 줄어든다. 유가가 오르면 물가 상승으로 인한 소비 둔화로 제품도 잘 팔리지 않게 된다.
HMC 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난 1973년과 1974년에 걸쳐 미국 다우존스산업지수는 35% 하락했다”며 “유가 급등은 세계 증시에 ‘메가톤급’ 악재”라고 말했다.
21일 뉴욕 증시가 급락한 이유는 배럴당 133달러를 넘은 고유가 충격에다 향후 유동성 공급이 중단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이날 공개된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는 “경기 하강 위험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은 커지고 있다”며 “비록 경기가 더욱 둔화된다고 하더라도 추가적인 통화완화 정책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인플레 우려 때문에 현재의 금리 인하 행진을 중단하고 앞으로 정책 방향을 ‘경기 부양’에서 ‘물가 조절’로 옮기겠다고 시장에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한양증권 김지형 연구원은 “고유가로 금리 인하의 기대감도 멀어지고 있다”며 “최근 유럽중앙은행과 일본은행이 한결같이 금리 동결에 나섰고 이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후유증과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감이 커지면서 세계 주가는 급락했지만 이후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으면서 회복세를 보여 왔다. 최근 두 달 사이 일본 닛케이평균주가가 13.6%, 영국 FTSE100지수가 12.8% 올랐고 한국 코스피지수도 13.8% 상승했다.
하지만 세계 증시는 고유가라는 직격탄을 맞아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21일(현지 시간) 유럽 증시와 미국 뉴욕 증시가 급락하자 22일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내림세를 보여 서브프라임 사태 때 나타났던 ‘도미노 폭락’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19일 장중 1,900 선을 돌파하는 등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던 국내 증시에는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최근 나흘간 53.46포인트가 빠졌다.
우리투자증권 권양일 연구원은 “유가뿐 아니라 곡물 가격마저 사상 최고 수준을 유지함에 따라 인플레 우려가 투자 판단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김학주 리서치센터장은 “세계 경제가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갑자기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의 소비가 늘어나 인플레가 유발된 것”이라며 “앞으로 원자재 곡물 등에 대한 투기 수요가 더욱 늘어나 금융시장에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22일 국내 증시에서는 대부분의 업종이 약세를 보인 가운데 특히 대한항공(―4.47%) 아시아나항공(―3.54%) 현대상선(―3.01%) 등 운송주들의 하락폭이 컸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