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 비판 “물정모르는 고립주의로 우방과 관계 손상”
미국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서한은 지금까지보다 표현이 한층 강경해졌지만 새로운 내용이 담긴 것은 아니다.
오바마 의원은 2월 의회 속기록용 서면 발언에서 ‘한미 FTA는 (요구되는) 기준에 못 미친다’고 했지만 이번엔 ‘심하게 결함이 있다(badly flawed)고 믿는다’며 수위를 높였다.
▽왜 보냈나=이달 중순 힐러리 클린턴 의원을 비롯한 9명의 의원이 FTA 반대 서한을 행정부에 보낸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비판 수위가 강해진 데는 취약 계층으로 꼽혀온 블루칼라 노동자를 공략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백인 노동자가 많은 대형 주를 공화당에 뺏기지 않는 게 오바마 캠프의 최대 과제다. 한미 FTA 반대를 주도하는 전미자동차노조(UAW)는 민주당의 핵심 지지기반이다.
오바마 의원과 힐러리 의원은 지난해부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론까지 제기하며 ‘노동자 계층 불만 파고들기’ 경쟁을 벌여 왔다. 오바마 의원 진영 관계자가 캐나다 대사에게 “NAFTA 반대는 선거 때문”이라고 말했다가 파문을 빚기도 했다. 이번 서한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측면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보호무역 성향이며 FTA에 비판적이다. 특히 한미 FTA에 대해선 자동차 문제 때문에 반대가 더욱 완강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항이 문제라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오바마 의원이 서한에서 ‘현재의 한미 FTA 협정 내용은 한국 시장에의 접근을 확대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없애 버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듯이 ‘이번에 더 얻어내지 못하면 영영 역조를 만회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자동차산업 지역 출신 의원들 사이에 팽배하다.
이에 맞서 공화당은 이 문제를 대선의 쟁점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공화당 전국위는 24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오바마 의원이 불량 국가 지도자와는 조건 없이 만나겠다고 하면서 핵심 우방과의 관계는 거부한다”며 “이는 국내 성장을 늦추고 핵심 우방과의 관계를 손상시키는 ‘물정모르는 고립주의’”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언론들도 민주당 후보들의 FTA 반대 태도를 “국익을 도외시한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워싱턴 주 출신 애덤 스미스 의원이 “한미 FTA 반대는 핵심 우방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하는 등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선 오바마 의원이 당선될 경우 민주당 지도부가 새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취임 전에 여러 FTA들을 통과시켜줄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러나 한미 FTA의 경우 오바마 의원이 워낙 선명하게 반대 발언을 쏟아놓은 상태여서 취임 전이든 후이든 ‘자동차 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손을 대지 않고는’ 태도를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