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쇠고기 수입회사들이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를 ‘자율규제’를 통해 해결하려 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 수출회사들이 ‘수출자율규제 결의’를 한다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중단 요청에 대한 미국 측 ‘답신’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방침이어서 양국 민간기업의 ‘결의’가 쇠고기 사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러나 업계 간 ‘자율규제’가 성사된다 하더라도 구속력과 실효성을 얼마나 갖출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국내업계 “30개월 이상 수입 안 해”
쇠고기 수입업자들의 모임인 한국수입육협의회(가칭)에 따르면 국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회사들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기로 하고 조만간 결의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결의문은 협의회의 권고사항일 뿐 개별 회사에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또 현재 수입업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여서 새 수입회사가 만들어져 협의회 결의를 따르지 않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협의회 관계자는 “국내에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요는 대부분 24∼25개월이 될 것이므로 수입회사들도 30개월 이하 물량 수입을 선호할 것”이라며 “현재 신고제인 수입업을 허가제로 바꿔 달라고 정부에 건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미국 메이저 육류업계들은 2일(현지 시간) 공동 보도문을 통해 “한국 소비자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쇠고기 연령 라벨을 부착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소비자들이 구매 결정권을 갖게 하겠다는 설명이다.
이 결정이 한국 정부의 요구 이전에 나온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미국 쇠고기 수출업계가 한국 시장에 쇠고기를 수출하기 위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금지를 자율결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메이저 업체들의 이런 결정은 한국 시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실제로 한국 정부가 3일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출 중단을 요청하겠다”고 밝힌 직후 미국 소 값은 폭락세를 보였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3일(현지 시간) 8월 인도분 소 값은 파운드당 1.0035달러에 거래돼 전날보다 0.5% 떨어졌다. 1주일 사이 최저치다. 이에 앞서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4월 초 이후 미국 소 값이 14%가량 상승한 것과 대비된다.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기 전인 2003년 미국이 전 세계에 수출한 127만 t의 쇠고기 가운데 20%가 한국에 수출됐다.
○ “30개월 이상 안 들여오는 것이 중요”
한국 정부는 미국 수출업계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최근 미국 정부의 태도로 볼 때 ‘재협상’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4일 “국민이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만큼 이것을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재협상이든 수출자율규제든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민간 차원의 ‘자율규제’에 기대를 걸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 장관은 이에 앞서 “미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 수출업계의 결의도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 금지 요청에 대한 ‘답신’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수출업계가 자율결의를 하면 새 수입위생조건을 고시(告示)하고 검역을 재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정학수 농식품부 제1차관은 “미국 업계의 자율결의 내용이라 미국 정부가 그 결과를 우리 정부에 통보해야 맞겠지만 통보 방식은 구두 또는 서면 모두 상관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양국 정부의 역할은 미국 쇠고기 수출업체들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자율규제를 합의하도록 측면에서 지원하는 일이 될 것”이라며 “현재 한국 상황이 나쁘기 때문에 미국 정부도 성의 있게 나올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암묵적인 동의’ 없이 미국 수출업계가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금지를 결의하기 쉽지 않은 만큼 자율결의를 하면 미국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도 4일 “재협상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한국 국민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며 민간 차원의 자율 결의 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민간 차원 자율규제의 구속력 여부와 규제 기간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예상된다.
정 장관은 4일 “미국 업계의 월령(月齡) 표시가 1년 이상 갈 수도 있다”고 말해 수입 규제가 미국의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 시행 이후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30개월 월령 표시’를 하기로 한 미국 메이저 업체들이 월령 표시 기간을 120일로 못 박았기 때문에 자율규제를 하더라도 이 기간을 넘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