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물가 1위 도시인 러시아 모스크바에는 어떤 차가 많이 보일까요.
3일 오후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 주변 도로를 산책하며 길거리에 다니는 자동차를 구경했습니다.
교통체증이 최악인 모스크바 거리에는 미국보다 다양한 브랜드의 차종이 넘쳐났습니다. 》
10대 중 2대 정도는 럭셔리 모델이었는데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는 수입차가 많기로 유명한 서울 강남보다도 흔히 보였습니다. 포르셰, 랜드로버, 재규어 등도 줄을 이었고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도 지나갔습니다. 시보레와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브랜드와 일본 ‘빅3’ 브랜드인 도요타 혼다 닛산도 많았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대·기아자동차와 쌍용자동차를 비롯해 GM대우자동차에서 생산해 시보레 브랜드로 수출된 한국산 자동차가 최소한 10% 정도는 돼 보였습니다. 실제로 현대·기아차의 러시아 시장점유율은 7%에 이른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중국산 자동차의 진출이었습니다. 체리자동차의 모델들이 간혹 보였는데 생각보다 조립 품질이나 디자인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에 진출하지 않았거나 철수한 프랑스 르노, 푸조, 시트로앵과 이탈리아 피아트, 알파로메오도 어렵지 않게 목격됐습니다.
반면 러시아 브랜드인 ‘라다’와 ‘볼가’는 가장 많기는 했지만 주로 구형이었고 신형의 비율은 낮았습니다. 라다를 만드는 회사인 아브토바즈의 러시아 시장점유율은 2004년에는 44%에 달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22.6%로 떨어졌습니다. 2004년 13%였던 ‘가즈’는 올해 4.9%에 불과합니다.
자국(自國)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이 28% 정도밖에 되지 않아 나머지 72% 시장을 두고 세계 자동차업계가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죠.
특히 원유 매장량이 많은 러시아는 국제 유가(油價) 상승으로 오일달러가 쏟아지고 시장경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생활수준이 향상돼 품질과 디자인이 떨어지는 자국 브랜드는 급속히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자동차 회사들이 글로벌 시장경제의 치열한 경쟁에 미리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죠.
현지인들에 따르면 러시아 자동차 회사들은 생산성과 제품 개발 능력도 부족해 지금부터 ‘대수술’에 들어간다고 해도 회생 가능성이 낮은 상태라고 합니다. 가장 먼저 우주선을 쏘아 올린 기술력을 갖춘 러시아가 자동차 생산에서는 실패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생산성 향상이나 혁신이 없이는 2, 3년 만에 시장의 절반을 잃을 수도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국내 자동차업계와 노조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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