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쉬는’ 기혼남성 100만명

  • 입력 2008년 6월 11일 02시 58분


아내 대신해 가사 - 육아 전담 6만4000여명

퇴직 중장년 남성, 재취업-자영업 실패 늘어

2002년 결혼한 정모(34) 씨는 지난해 초 다니던 전자회사를 그만두고 대학 동창들과 함께 대리운전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장이 포화상태여서 사업은 적자를 면치 못했고 1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그는 전 직장에 재입사할 수 있는지 알아봤지만 회사에서는 “여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정 씨는 현재 집에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아내가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 미안하다. 특히 네 살짜리 딸이 ‘아빠는 왜 매일 집에 있느냐’고 물으면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7 경제활동인구연보’에 따르면 정 씨처럼 직장이 없는 기혼 남성이 198만3000명에 이른다.

이 중에는 구직활동에 나섰지만 직업을 구하지 못한 실업자가 21만 명이었고 일할 능력은 있으나 일할 의사가 없거나, 일할 능력이 없는 비경제활동인구는 177만3000명이었다.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나이가 많아 일할 수 없는 사람은 66만7000명에 불과했다. 또 그냥 쉬는 사람 중 심신장애로 분류된 남성이 미혼, 기혼을 합쳐 28만500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할 수 없어서 쉬는 기혼 남성은 95만 명에 못 미친다.

직장 없는 기혼 남성 198만 명 중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각종 이유로 일을 안 하거나 못하는 사실상 ‘백수’가 100만 명 이상이라는 뜻이다.

아내 대신 가사, 육아를 전담하는 ‘남성 주부’는 6만4000명이었다. 취업준비를 위해 고시학원, 직업훈련기관, 대학원 등에 다니는 ‘취업 준비생’은 1만7000명이었다.

직장이 없는 기혼 남성 중에는 퇴직한 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중장년층이 가장 많았다. 직장생활을 그만두는 시기는 점점 짧아지는 반면 재취업할 곳은 마땅치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집에서 쉬는 중장년층 남성 중에는 직장을 그만둔 뒤 재취업에 실패했거나, 퇴직금으로 자영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한 이가 많다고 지적한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전통적인 성(性)역할 관념이 희박해지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이 생계를 책임지는 가구가 늘고 있다”며 “중장년층 남성을 위한 재취업 시장을 활성화하지 않으면 집에서 쉬는 남성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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