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있는 사람이 맡긴 돈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빌려줘…
은행 ‘돈장사’ 왜 중요할까요?
→
!
수요-공급자 알맞게 연결시켜
거래 비용 낮추고 위험은 줄여
효율 투자 이끄는 금융 조정자
사례
이 세상에 은행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은행 없는 세상을 한번 상상해 보자.
김채무 씨는 지금까지 부지런히 일해 모은 돈으로 자그마한 집을 장만하려고 한다. 벽장 속 비밀장소에 모은 돈을 헤아려 보니 조금만 더 모으면 자기가 점찍은 집을 살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집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사려고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휴, 큰일이네. 차라리 부족한 돈을 빌려서 얼른 집을 사는 것이 좋겠어. 그렇지만 어디 가서 돈을 빌리나?’
한편 박대부 씨는 얼마 전 자신의 땅을 팔고 받은 돈 때문에 고민이다. ‘나에게는 큰 쓸모가 없는 땅이라 누가 갑자기 산다고 하기에 덥석 팔긴 했는데 이제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액수가 커서 집에 두자니 너무 불안하고, 차라리 누구한테 빌려줬으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 끝에 김 씨는 필요한 돈을 빌려줄 사람을 찾기 위해, 박 씨는 돈을 빌릴 사람을 찾기 위해 무작정 길을 나섰다. 두 사람은 각자 원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기저기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별로 성과가 없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 갔다.
어쩌다 김 씨가 만난 사람들은 그가 원하는 금액보다 더 적거나 더 많은 금액만을 빌려가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어떤 때에는 이자가 너무 비싸고, 어떤 때에는 돈을 빌릴 수 있는 기간이 짧아 포기해야 했다.
박 씨가 만난 사람들도 그가 갖고 있는 돈보다 더 많이 빌리려 하거나, 일부만 빌리려는 경우가 많았다. 이자가 너무 비싸다고 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돈을 빌려주면 잘 갚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우연히 공원 의자에 함께 앉게 되었다. 지친 두 사람은 한참을 앉아 있다 서로의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혹시 돈 필요하지 않으세요? 전 여윳돈이 생겨서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약간 받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박 씨의 말에 김 씨는 귀가 솔깃해졌다. “아, 그러세요. 전 돈이 필요해서 빌려줄 사람을 계속 찾아 다녔지요. 저 역시 제 조건에 맞게 돈을 빌려주실 분을 만나기가 너무 어렵네요.”
두 사람은 서로의 사정과 조건을 다 듣고 나서 찾고 있던 사람이 상대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두 사람은 계약서를 작성하고 마침 지나가는 사람에게 계약 내용에 대해 증인을 서 달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 모두 거래에 만족했지만, 김 씨의 기쁨이 더 컸다. 이제 비로소 집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해
사람들 사이에서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금이 융통되는 과정을 ‘금융(finance)’이라 부르며, 그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을 ‘금융시장’이라고 한다.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쪽이 자금의 수요자, 빌려주는 쪽이 자금의 공급자가 된다.
금융시장은 크게 직접금융시장과 간접금융시장으로 구분한다. 직접금융시장이란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직접 자금을 빌려주고 빌리는 시장을 말하며, 간접금융시장이란 다양한 금융 중개회사를 매개로 자금이 오가는 시장을 일컫는다.
은행은 간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매개해 주는 대표적인 금융 중개회사다. 여윳돈이 있는 사람은 은행에 돈을 맡기면 되고, 은행은 그 돈을 필요한 사람에게 융통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은행은 ‘돈 장사’를 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은행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은행의 역할을 하는 대부업자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업자들이 땀 흘려 열심히 일하기보다 가만히 앉아서 돈놀이를 통해 돈을 버는 못된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은행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먼저 은행은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효율적으로 연결시켜 금융거래에서 발생하는 거래비용을 낮춰 준다. 은행이 없을 때 김 씨와 박 씨가 지불해야 했던 거래비용을 생각해 보자. 그들이 원하는 거래 당사자를 만나 거래에 합의하고 합의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모든 비용이 거래비용이다.
은행은 금융행위와 관련해 발생하는 위험을 분산시켜 주는 역할도 한다. 만일 박 씨가 여윳돈을 모두 김 씨에게 빌려줬다고 하자. 이런 경우 박 씨는 김 씨가 빚을 갚지 않을 위험을 고스란히 지게 된다. 하지만 은행은 수많은 자금의 수요자들에게 돈을 나눠 빌려줌으로써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
이 외에도 은행은 엄격한 대출심사 과정을 통해 조성된 자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투자의 흐름을 조정하는 역할도 맡는다.박 형 준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교육 전공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