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과 함께 한화 장교동 본사뒤 공터 공원 조성
■ 작지만 내실 서울우유는 알짜기업답게 소박하게
사옥(社屋)이 달라지고 있다.
단순한 ‘큰 건물’에 지나지 않던 사옥이 기업을 알리는 ‘브랜드’로, 더 나아가 전체 도시 이미지를 고양하는 핵심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상당수 국내 기업이 대지 용적률에 맞춰 사옥을 크게 짓는 데 치중하면서 1980년대까지는 대체로 의미 없는 ‘랜드마크 스타일’의 사옥이 많았다. 서울 영등포구 63빌딩(1985년 준공)이나 용산구의 LS용산타워(옛 국제센터빌딩·1985년 준공)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일반인에게 공간을 할애하는 사옥이 많아졌고, 2000년대부터는 사옥 자체에 의미와 철학을 부여하는 추세다.
○ ‘사옥 속에 철학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SK텔레콤 사옥은 5분의 4 정도 되는 높이부터 앞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27층부터 앞으로 꺾여 있다.
이는 ‘휴대전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폴더형 휴대전화를 열면 윗부분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묘사했다.
또 옆에서 보면 가볍게 인사하는 모습을 닮았다. SK텔레콤 측은 “이는 최태원 그룹 회장이 강조하는 ‘고객에 대한 감사’와 일맥상통한다”며 “실제 최 회장이 최종 디자인 결정에 관여했다”고 했다.
서울 중구 장충동 동국대로 이어지는 오르막에 위치한 외국계 광고회사 웰콤 사옥(웰콤시티)도 눈길을 끈다.
사각형 건물 4개 동의 웰콤시티는 뒷동에서도 앞동을 관통해 볼 수 있고, 그래서 바람도 잘 통한다고 한다. 사옥 한가운데는 감나무를 심어 놨다. ‘자연과의 조화’ ‘비움의 미학’을 보여준다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이는 “광고의 창의성은 편안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박우덕 웰콤 사장의 평소 생각을 반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 뷰에 있는 구글 본사 내부는 우주선을 닮았다. 구글 로고가 새겨진 개인 장비와 장난감이 있고, 회의실은 사방이 투명한 유리창이다. 하늘에는 풍선이 떠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구글의 이념을 잘 보여준다.
○ 내부와 외부의 소통 공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서초타운. 32층, 35층, 43층 등 3개 빌딩의 서초타운은 삼성이 추구하는 초일류 기업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는 평을 듣는다. 건물이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하기 때문에 강한 인상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강함은 곧 차가움을 연상시킨다. 꽉 막힌 느낌이 든다는 지적도 있다.
설계를 맡은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는 홈페이지에서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사거리와 연결되는 가로광장, 단지 내 휴식 공간 역할을 하는 도심공원과 전자 쇼룸 등은 막힌 듯한 느낌을 보완하는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사옥은 장교빌딩과 직각으로 서 있다. 두 회사는 공동으로 소유한 공터를 ‘파리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한화 측은 매주 금요일 정오에 파리공원에서 금요음악회를 연다.
서울 을지로입구 일은증권의 1층 부분도 공터로 개방한 ‘공적(公的)인 사유 공간’이다. 이 밖에 서울시청은 역사와의 공존, 시민고객을 위한 문화 공간,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 등 ‘공존’을 새 사옥의 콘셉트로 내세웠다.
제일기획 스페이스마케팅팀 김재산 수석은 “예전에는 ‘브랜드 숍’이란 말을 했지만, 요즘은 ‘브랜드 빌딩’이란 말을 자주 쓴다”며 “사옥을 통해 휴식과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제공하면서 그 기업의 브랜드 인지도를 함께 높이는 추세”라고 말했다.
○ 강할수록 겸손한 사옥
높고 웅장한 사옥이 아니라 소박한 사옥에 내실을 다지는 기업도 많다.
무(無)차입 경영으로 잘 알려진 남양유업은 다음 달 전남 나주시 금천면에 다섯 번째 공장을 준공하지만 아직 자체 사옥이 없다.
서울우유는 유(乳)업계 1위이지만 사옥은 서울 중랑구 상봉동의 4층 건물이 전부다.
유아복 전문기업 이에프이도 매년 꾸준히 수익을 내는 알짜기업이지만 1995년 서울 구로구 디지털1단지에 세운 6층짜리 사옥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통합 브랜드 관리업체인 인터브랜드 박상훈 사장은 “사옥은 기업의 비전과 문화를 유형화해 보여줄 수 있다”며 “단순히 짓는다는 개념을 넘어 기업의 비전을 형상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