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분양가 인하요구, 생때VS폭리

  • 입력 2008년 6월 11일 18시 42분


이달 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물산 빌딩 앞. 경기 용인시 '동천 래미안' 계약자 70여명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분양가로 장난치는 삼성은 각성하라'….

지난해 9월 분양받은 동천 래미안의 가격이 너무 높으니 깎아주거나 단지 내 시설을 추가로 해 달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최근 용인지역에서 비교적 싼 값에 분양하는 단지가 늘자 "너무 높은 값에 분양받았다"고 판단했다.

분양경기 침체가 분양가 인하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해 공급된 단지에 비해 싸게 분양하는 곳이 늘면서 "비싸게 계약했으니 분양가를 깎아 달라"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는 것.

업체측은 "계약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나 가격을 낮춰달라는 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계약자들은 "분양가격이 과도했다는 게 인근 단지 분양가로 확인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계약했어도 너무 비쌌으니 깎아줘야 한다."

동천 래미안은 109~338㎡ 2393채 규모로 3.3㎡(1평)당 1726만원에 공급됐다. 지난해 9월 청약 때 109㎡는 197.5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올 들어 용인지역 분양시장이 가라앉자 성복·신봉지구 등에서 3.3㎡당 1550만 원대에 공급이 잇따랐다. 업체들은 당초 3.3㎡당 분양가로 1700만 원 이상을 책정했으나 용인시의 요구와 시장상황 등을 감안해 대폭 낮췄다.

동천 래미안 입주 예정자 모임의 전문수씨는 "3.3㎡당 200만 원 가까이 비싸게 분양받았다"며 "바가지를 썼으니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7년 3월 공급된 경기 용인시 흥덕지구 '신동아 파밀리에'는 대량 해약사태를 빚기도 했다. 이 단지는 중형 임대아파트로 3.3㎡당 임대보증금은 870만 원선. 인근 '경남 아너스빌'의 분양가는 3.3㎡당 900만 원 남짓이다.

일부 신동아 파밀리에 계약자들은 "임대보증금이 인근 아파트 분양가와 비슷할 수 있느냐"며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신동아건설은 759채 중 200여 채의 해약을 받은 뒤 해약물량을 다시 공급 중이다.

●"가격 인하 요구는 경제 원리에 어긋난다."

전문가들은 분양가 인하 분쟁에 대해 대체로 "경제 원리에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연구실장은 "수요자가 스스로 판단해 계약을 했다면 거래는 끝난 셈"이라며 "올 들어 인근 분양가격이 올랐다면 계약자들이 분양가를 더 높여줄 건가"라고 반문했다.

건설업계는 분쟁 중인 아파트들이 공급 당시 비교적 높은 청약경쟁률을 보인 점도 지적하고 있다. 경쟁 속에 당첨된 사람들이 뒤늦게 다른 조건을 요구한다면, 건설업체 입장에서 당첨되지 않은 청약자들과 계약할 기회를 박탈당한 셈이라는 주장이다.

소비자시민모임 황순옥 실장은 "부동산 값은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다"며 "계약자들이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법리적으로는 (가격 인하 요구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비슷한 지역이더라도 입지여건 등이 다르기 때문에 분양가를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분양 할인도 가격 분쟁 요소

2006년 분양한 부산의 A아파트는 올 들어 10% 남짓 할인한 값에 수요자를 찾고 있다. 입주를 앞두고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기 위한 것. 이러자 제값을 주고 분양받은 기존 계약자들이 "우리에게도 할인 혜택을 주지 않으면 소송할 계획"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대구에서 할인 분양중인 B건설 관계자는 "한번 정한 분양가는 높일 수가 없고 , 내릴 때는 이미 판 물건 값까지 깎아줘야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김동언 간사는 "후분양 제도를 통해 완제품을 팔아야 계약자의 분양가 분쟁이 사라질 수 있다"며 "그 때까지 건설업체가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계약자의 요구를 웬만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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