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적자 누적… 단기외채 급증… ‘불길한 전주곡’

  • 입력 2008년 6월 13일 02시 58분


“경유값 폭등 때문에…” LPG차 개조 늘어최근 경유 값이 폭등하면서 경유보다 값이 싼 액화석유가스(LPG)를 자동차 연료로 쓰기 위해 차의 엔진 등을 개조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12일 서울의 한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정비 기술자가 1t 화물차의 연료탱크를 LPG 탱크로 교체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경유값 폭등 때문에…” LPG차 개조 늘어
최근 경유 값이 폭등하면서 경유보다 값이 싼 액화석유가스(LPG)를 자동차 연료로 쓰기 위해 차의 엔진 등을 개조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12일 서울의 한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정비 기술자가 1t 화물차의 연료탱크를 LPG 탱크로 교체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11일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발언한 뒤 그 파장이 커지고 있다. 12일에도 임 의장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내외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며 거듭 우려를 표명했다.

임 의장의 발언과 관련해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한국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어떤 대응책을 세워야 할지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는 “한국의 경제 구조가 당시와는 많이 변해 상황이 다르다”며 “특히 외환위기의 본질은 ‘달러 지급 능력의 고갈’인데 현재 이 같은 우려는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임 의장이 외환위기 얘기를 꺼낸 것은 추가경정예산을 밀어붙이기 위한 분위기 잡기 포석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여건이 대단히 좋지 않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하면서 정부가 최적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4가지 근거에서 나온 경제 위기론

임 의장은 현 경제 상황을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게 보는 이유로 △경상수지 적자 △단기외채 급증 △고용 및 투자 부진 △물가 상승 등 4가지를 근거로 제시했다.

올해 1∼4월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67억7000만 달러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적자액(82억8000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연간 경상수지 적자가 91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12월 이후 5개월 연속 적자를 내고 있어 한국이 ‘만성 적자국’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의 만기 1년 미만 단기외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588억 달러. 1997년(638억 달러) 당시의 2.5배에 이르는 규모다. 11년 전 외채가 눈 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에서 채권국들이 한꺼번에 상환을 요구하며 외환위기가 터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려되는 상황이다.

최근의 고용사정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실업률 자체는 올해 4월 현재 3.2%로 1998년(7.0%)보다는 크게 낮은 수준. 하지만 신규 일자리가 별로 늘지 않는 데다 임시직, 일용직이 크게 줄어 저소득층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건설경기가 부진에 빠졌고 기업들도 설비투자를 크게 늘리지 않고 있어서다.

고용이 불안한 가운데 5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9%나 올랐다. 게다가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가치는 하락)해 중산층의 실질적인 구매력은 줄어들고 있다. 외환위기 때에도 원화가치가 급락하면서 서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 韓銀총재 “경상수지 적자 큰 문제 아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경기가 하강국면에 진입한 건 맞지만 외환위기 때와 지표상의 숫자만을 비교해 ‘경제 위기론’을 부각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우선 경상수지 적자를 볼 때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비교해 봐야 경제가 적자의 충격을 감내할 수 있는 정도를 알 수 있다는 것. 올해 예상 GDP 대비 경상적자 비율은 1%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되는 반면 1996년에는 4.1%, 1997년에는 1.6%였다.

이와 관련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외환위기 당시 경상수지 적자는 경제 규모에 비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과거 10년간 계속 흑자를 냈고 경제 규모에 비해 큰 문제를 일으킬 정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단기외채도 그 자체만을 볼 게 아니라 지불능력을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1997년에는 종합금융회사 등 금융회사가 외화자금을 낮은 금리의 단기채로 빌려와 과잉 투자에 나섰던 기업들에 고금리로 장기대출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세계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외국 전주(錢主)들은 만기 연장 거절을 통보해 왔지만 국내 금융회사들은 달러 현찰을 마련할 수 없었던 것. 빌려온 돈과 빌려준 돈의 만기가 일치하지 않는 ‘미스매치’로 인해 지급 불능 상태에 빠졌다.

반면 현재 단기외채 급증은 조선 수주와 해외투자 펀드가 늘면서 조선업체와 자산운용사들이 앞으로 들어올 달러의 환위험을 줄이기 위해 선물환을 은행에 팔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도한 단기성 외화자산을 보유해 역시 환위험에 노출된 은행이 이를 헤지하기 위해 외화단기채무를 늘리면서 생긴 현상. 따라서 미스매치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금융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욱이 외환보유액은 1997년 204억 달러에서 지난해 말 2622억 달러로 크게 늘었다. 따라서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도 외환위기 당시 312%에서 지난해 말엔 60.5%로 낮아졌다. 갑작스러운 상환 요구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 “기업 ‘쌓아둔 돈’ 풀도록 유도해야”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때와 여건은 다르지만 신규 일자리 수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데다 물가가 급등하는 점을 ‘위기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저성장과 고물가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는 것.

대부분의 전문가는 외환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금융회사 건전성에 대한 감독 강화가 가장 중요하지만, 현재 금융 건전성은 이미 개선돼 있기 때문에 경제난 타개를 위해 필요한 방법은 기업의 투자를 늘리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제조업체의 부채비율은 1998년 평균 356%에서 지난해 말엔 평균 81%대로 떨어졌다. 건전성이 높아진 점은 환영할 만하지만 그만큼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 올해 4월 기업들의 설비투자 규모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0% 감소했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업들의 내부유보자금이 충분한 만큼 기업 활동을 장려하는 정책적 지원을 통해 투자를 유도해야 일자리가 늘고 내수가 회복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물가를 잡기 위해선 단기적인 대책을 쓰고,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선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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