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수입 관련 용어별 차이

  • 입력 2008년 6월 13일 02시 58분


‘재협상(re-negotiation)’, ‘추가협상(additional negotiation)’, ‘양해사항(understandings)’, ‘자율규제협정(VRA·Voluntary Restraint Agreements)’, ‘수출자율규제(VER·Voluntary Export Restric-tion)’….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싼 촛불시위가 이어지면서 후속 대책과 관련해 다양한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12일 “재협상에 준하는 추가협상을 한다”고 밝혔고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수일 내 양국 간 추가적인 양해사항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법에서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이란 개념은 없다.

그러나 관행적으로 재협상은 이미 타결된 협정문을 백지화하고 협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추가협상은 기존 협정문을 수정하거나 보완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협정문에 딸린 부속서에 일부 내용을 추가하는 형식이다.

4월 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의 내용을 백지화하고 30개월 이상 수입금지 등의 조건을 협정문 등에 새롭게 명문화한다면 이는 재협상에 해당한다.

협정문의 수정 없이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한국에 반입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보장을 받을 경우 추가협상이 된다.

정부가 야당과 시민단체 등이 주장하는 재협상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 것은 국가 신뢰도 때문이다. 정치적 논리 때문에 재협상이란 용어를 쓸 경우 앞으로 각종 협상에서 협상 상대국이 한국의 ‘신뢰도’를 문제 삼아 협상 단계에서부터 무리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

양해사항은 일종의 ‘각서’와 같은 외교문서다. 한미 양국 정부가 양해사항에 합의하면 우리 정부가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검역을 거부하더라도 미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막기 위해 검역주권을 발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한때 현실적인 대안으로 검토했던 ‘자율규제협정’ 또는 ‘수출자율규제’는 일종의 ‘부분 재협상’에 해당된다.

자율규제협정과 수출자율규제는 형식만 다를 뿐 내용은 같다. 국가 간 협정 형태로 맺어지면 자율규제협정이고 협정이 아닌 정치적인 합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집행하면 수출자율규제가 된다.

이를 활용하면 미국은 협정문 원안을 수정하지 않은 채 한국에 즉각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게 되고 한국은 ‘30개월 미만 쇠고기’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정부 개입을 금지하는 WTO 체제를 위반하는 것으로 국제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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