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갈등 키우고 제조업 성장 막아 속앓이
원유와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쾌재를 부를 줄 알았던 자원 부국과 농산물 수출국들이 뜻하지 않은 문제들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7일 보도했다.
최근 식량 가격 급등이 불러온 아이티의 폭동에서 볼 수 있듯이 인플레이션은 식량과 자원을 수입하는 나라들에 가장 큰 부담을 준다. 그러나 이 신문은 이제 천연자원과 농산물을 수출하는 국가들도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를 경험하고 있다며 이 나라들에서 새로 생겨난 부를 둘러싸고 정치사회적 갈등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소득 불평등’이 가져온 박탈감. 자원 수출로 혜택을 입은 계층은 소수인 반면 대다수 일반 시민은 높아진 식량 가격과 에너지 비용에 고통을 받게 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빈곤지역 주민들이 외국인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한 것이나, 아랍에미리트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폭동이 일어난 것도 이러한 사회적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이라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석유로 막대한 외화를 만지게 된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 지출을 늘려 소비를 촉진시키려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인플레이션율이 31%를 넘긴 데다 분배과정에서 관료조직의 부패만 커졌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지역이 자치권 확대를 주장해 국가의 분열을 가져온 경우도 있다. 볼리비아에서는 천연가스와 석유가 풍부한 산타크루스 지역을 중심으로 자치를 원하는 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에너지 국유화’를 주장하며 자신의 지지기반인 인디오들에게 혜택을 나눠주는 새 헌법에 찬성하고 있어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 신문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여 온 브라질과 러시아에서도 환율 강세가 장기적으로 제조업 성장 동력을 깎아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은 세계 1위의 철 수출 국가이며 콩 수출량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설탕, 커피, 쇠고기 수출로 외화가 넘쳐나고 있지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으로 노동자들의 지지를 잃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고금리 정책을 고수했다.
이 신문은 이런 정책이 결국 달러대비 환율을 더 떨어뜨려 제조업 분야의 수출경쟁력을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항공기제조회사인 ‘엠브라에르’의 경우 환율강세로 생산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1분기 순이익이 19%에서 13%로 떨어졌다.
또 콩을 경작하는 농부들이 아마존 지역을 무분별하게 개간해 브라질 정부가 환경파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997년 ‘풍요의 역설: 석유 붐과 산유국들’이라는 저서를 쓴 스탠퍼드대의 테리 린 칼 교수는 “수출 급증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정부에서 다루기가 매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