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대대손손 모십니다”

  • 입력 2008년 6월 21일 03시 11분


PB고객 자녀 중매 서주고… 취업준비에 공부모임까지…

《지난달 17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한아트홀 내 콘서트홀. 고급스러운 정장 차림의 20대 중후반 여성 25명과 20대 후반∼30대 초반 남성 25명이 꼼꼼히 메모해 가며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강사는 ‘시골의사’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재테크 전문가 박경철 씨. 강의가 끝난 뒤 이들은 콘서트홀 옆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식사를 하며 단체만남 행사를 가졌다. 전문 진행자의 사회로 자기소개, 게임 등을 하며 2시간의 ‘탐색전’을 거친 끝에 각자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종이에 적어 냈다. 이날 총 9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이 행사의 이름은 ‘세대를 넘어(Beyond Generation) 시즌 3’. 참석자들은 신한은행에 10억 원 이상 돈을 맡긴 프라이빗뱅킹(PB) 고객의 자녀들로 참가비는 무료였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고액 재산가의 2, 3세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 부(富)를 축적한 1세대가 은퇴함에 따라 그들의 재산을 물려받을 세대를 미래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 일반인으로서는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은행들로서는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 은행들 “재산가 자녀의 마음을 훔쳐라”

하나은행은 ‘HPBM(하나 PB 멤버스)’, 신한은행은 SPSC(신한 프라이빗 소사이어티 클럽)라는 ‘재산가 2세 클럽’을 만들어 전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하반기 중 비슷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하나은행의 HPBM 회원은 300명, 신한은행의 SPSC 회원은 160명 정도. 양쪽 모임에 함께 가입한 회원도 적지 않아 두 모임의 회원끼리 ‘조인트 미팅’ 행사를 연 적도 있었다.

2004년 하나은행이 이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모임은 주로 문화, 취미활동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혼회원 미팅행사, 재테크 강좌, 분야별 공부 모임 등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2005년 SPSC를 만들어 지난해까지 특급호텔에서 맞선행사를 주최했던 신한은행은 올해부터 모임의 성격을 ‘PB 2세 스쿨’이라는 실용 강좌 겸 미팅 파티로 바꿨다.

“젊은 참석자들이 실질적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고, 인적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는 실용적 만남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신한은행 PB고객부 안세훈 과장은 설명했다.

이 은행은 PB고객 미혼자녀의 일대일 중매를 전담하는 커플매니저를 따로 두고 있다. 고객 간 중매가 은행의 수신 증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 고객은 30대 초반의 딸을 ‘자녀 클럽’에 가입시키고 싶다면서 증권사에 예치해 놨던 30억 원을 신한은행으로 고스란히 옮겨왔을 정도. 이 은행 관계자는 “은행을 통해 소개받으면 적어도 상대 집안의 재산 상태는 믿을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라며 “‘상류층’ 고객들이 그들만의 폐쇄적 네트워크를 원하는 속성도 이런 서비스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 3세 마케팅으로도 확대

PB 고객들의 자녀 교육, 취업 수요를 겨냥한 서비스도 확대되고 있다.

SC제일은행은 8억 원 이상 투자자의 대학생 자녀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파이낸셜 리더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SC제일은행 PB센터와 투자자문팀에서 인턴으로 일한 뒤 싱가포르 스탠더드차터드(SC)그룹의 PB사업본부에서 현장실습하고 싱가포르 소재 대형 투자은행(IB)을 견학하는 4주짜리 프로그램이다. SC제일은행의 한 고객은 자녀를 이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고 싶어 PB 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하한선인 8억 원을 맡겼다가 다른 자녀도 참여시키기 위해 수억 원을 더 맡기는 등 이 서비스가 실질적으로 고객 유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은행은 PB고객 자녀를 대상으로 은행 내 인재개발원의 신입행원 연수교육 체험 프로그램 개설을 검토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최근 ‘3세 마케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 은행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방학 중 ‘하나 키즈 MBA 프로그램’을 열어 경제교육을 해주고 있으며 서울 강남권 일부 지역의 PB센터에서는 ‘학습 코칭 서비스’도 시범 실시하고 있다. PB 고객 손자 손녀들을 대상으로 최적의 학습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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