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재계 파워엘리트]코오롱그룹

  • 입력 2008년 6월 26일 02시 57분


“오늘 푹 빠져야 내일이 보인다” 마니아 경영

《코오롱그룹의 최근 행보를 가장 잘 보여주는 키워드는 ‘변화’와 ‘혁신’이다. 코오롱은 1957년 4월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생산한 ‘한국나일론’을 모태로 해 건설, 화학, 전자소재, 신(新)섬유 등 첨단 분야로의 다각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대기업들이 유동성 위기를 맞았던 1998년에도 코오롱은 수익을 낼 정도로 내실 경영을 했지만 정작 위기는 2004년에 닥쳐왔다. 화학섬유산업의 수익성이 악화된 데다 핵심 계열사인 ㈜코오롱 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그룹은 대규모 적자를 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2005년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면서 ‘턴어라운드 경영’ 목표를 밝혔다. 노후설비를 들어내고 자산 매각, 비(非)상장법인 합병 등을 하면서 철저하게 수익 위주의 경영을 펼쳤다. 그 결과 약 1년 만에 그룹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최근 코오롱은 다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2015년 세계 10대 ‘물 기업’에 진입한다는 비전을 세운 가운데 유기태양전지 개발 등 신재생에너지사업에도 적극 뛰어들어 ‘섬유’에서 ‘첨단소재’ 회사로 변신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화학 소재 바이오 △건설 레저 서비스 △패션 유통 등 3대 주력 사업군으로 재편했다. 화섬(化纖) 업계의 대표적인 강경 노조였던 ㈜코오롱 노조도 지난해 ‘노사 상생동행 선언’을 하면서 회사 발전을 이끄는 한 축으로 힘을 더하고 있다.》

이웅열 회장등 경영진, 직원과 소통 중시… 섬유서 첨단소재-물사업까지 변화 이끌어

○ ‘변신’ 주도하는 핵심 경영자들

이 회장은 변화와 혁신의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에 치중하는 대신 대부분의 일상 업무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룹의 경영 방침을 정하거나 신규사업을 추진할 때는 직접 나서는 강한 결단력도 보여준다.

그는 기업 경영도 온몸을 던져야 한다는 ‘마니아 경영론’을 강조한다. ‘3박 4일’이라는 별명도 한번 몰두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에 붙여졌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사원들의 신망도 두텁다. 이 회장은 전국 34개 계열사를 수시로 방문해 임직원과 함께 식사하며 의견을 경청하곤 한다. 올해 4월 구미공장의 ‘행복공장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해 공장 외벽에 직접 페인트칠을 하면서 근로자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민경조 그룹 부회장은 산업은행을 거쳐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해 그룹과 인연을 맺는다. 1983년부터 2006년 말 그룹 부회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줄곧 코오롱건설에서 근무한 건설 전문가이기도 하다. 직원들의 애환을 직접 챙길 정도로 섬세하면서 포용력이 크다는 평을 듣는다. 직원들과 메신저를 즐기고 개인 블로그를 직접 관리하며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재계에서 ‘논어(論語) 경영인’으로 통할 정도로 논어 마니아이기도 하다.

배영호 ㈜코오롱 화학소재부문 사장은 1970년 코오롱에 입사해 영업, 생산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1998년 코오롱유화와 코오롱제약 사장을 겸직했다. 성장이 정체된 두 회사를 동시에 흑자 계열사로 만들어놓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코오롱 사장으로 취임했다. 소탈한 성품으로 올해 4월 대기업 간 자율적 기업통합의 성공작으로 꼽히는 ㈜코오롱과 SKC의 폴리이미드(PI) 필름 합작회사 설립의 주역이기도 하다.

한준수 ㈜코오롱 기능소재부문 사장은 화학공학과 출신의 공학도답게 기술을 중시하고 꼼꼼한 일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 “제조업도 디테일을 중시해야 한다”며 디테일 매니지먼트를 강조한다. 일본에서 10년 이상을 근무한 그룹 내 대표적인 일본통이기도 하다. 스키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한다.

김종근 코오롱건설 사장은 1977년 입사 이후 주요 계열사에서 요직을 거친 정통 ‘코오롱맨’으로 올해 건설을 맡기 전까지 코오롱글로텍 대표이사 사장을 5년 동안 지냈다. 코오롱건설 사장 취임 직후 전국의 건설현장을 직접 방문해 직원들을 챙기며 결속력을 강조했다.

FnC코오롱, 코오롱패션, 캠브리지 등 그룹의 패션부문 3개사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제환석 사장도 ‘고객중심’과 ‘현장경영’을 강조한다. 2003년 사장 취임 이후 700여 개의 전국 매장을 모두 방문해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 코오롱을 젊게 만드는 경영자그룹

박동문 코오롱글로텍 대표이사 부사장은 코오롱상사, ㈜코오롱 기획총괄 및 인도네시아 법인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거쳐 올해 코오롱글로텍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돋보인다는 평이다. 임직원에게 직장생활의 노하우, 격려와 칭찬의 메시지가 담긴 e메일을 수시로 보내며 격의 없는 소통을 즐긴다.

변보경 코오롱아이넷 사장은 한국IBM과 LG IBM을 거쳐 2002년 코오롱정보통신 사장으로 합류했다. 그룹 최초로 외부에서 영입한 CEO다. 무역과 정보기술(IT)을 결합한 코오롱아이넷을 이끌고 있고, 추진력과 결단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이우석 코오롱제약 사장은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과장을 지낸 관료 출신으로 2006년 코오롱에 합류했다. 올해 코오롱제약 대표이사로 발탁된 그는 기존 제약사와 차별화된 마케팅과 제품으로 제약업계에서 승부수를 걸겠다는 각오다.

김태환 코오롱생명과학 사장은 그룹의 미래사업인 바이오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2004년 그룹 경영전략본부장으로 일할 때 그룹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는 등 기획과 관리 부문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다.

김남수 그룹 경영기획실장은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코오롱 인사팀에 입사해 경영지원본부장까지 지낸 인사 및 지원 분야 전문가로, 매월 조회 때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하는 등 직원들 간의 소통을 강조한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2008 재계 파워엘리트’ 시리즈는 매주 화 목요일 게재됩니다.

▼사업 다각화 앞장선 4人의 기수▼

㈜코오롱은 코오롱그룹의 변화와 혁신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그룹의 모기업인 코오롱은 1957년 나일론 생산업체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첨단 화학소재를 생산하면서 핵심 계열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때는 화섬업계의 대표적인 강경 노조가 있는 곳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노사화합의 대표적 사업장으로 손꼽힌다. ‘한국의 듀폰’을 목표로 한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는 노사가 함께하고 있다.

코오롱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는 최고경영자들의 경영자적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이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부사장 4명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는 게 회사의 평가다.

조희정 부사장은 타이어코드, 아라미드 등 코오롱의 대표 품목을 총괄하고 있다. 구미공장장을 거쳐 코오롱 산자사업본부장을 지내기까지 생산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현재 코오롱에서 생산한 첨단 소재들의 국내외 영업을 총괄하고 있다.

코오롱 전략기획본부장인 안병덕 부사장은 기획, 재무, 인사를 책임지고 있다. 회장 비서실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고 코오롱의 사업구조 고도화 작업을 진행시키는 실무 총책임을 맡았다. ‘노사 상생(相生)’을 이끌어 내는 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문대인 부사장은 코오롱유화 울산공장에 입사해 울산공장장과 여수공장장을 거쳐 지금은 김천공장장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생산현장통’으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박동원 부사장은 미국 신시내티대에서 고분자 관련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삼성토탈과 제일모직의 연구개발(R&D) 부문에서 일하다가 올해 초 코오롱에 합류했다. 현재 고부가가치 전자재료 품목을 총괄하고 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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