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분양률 알려지면 계약자 해약요구 등 역효과
미분양 아파트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D건설의 분양 담당자는 지난달 11일 정부가 ‘지방 미분양 대책’을 내놓은 뒤 오히려 걱정이 늘었다.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사는 사람에게 취득·등록세를 깎아주기로 하면서 그 전까지 제대로 공개하지 않던 미분양 규모를 낱낱이 지방자치단체에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솔직히 그동안 수요자나 해당 지자체에 미분양 규모를 축소해 알리는 일이 많았다”며 “미분양 실태가 드러나면 아파트 팔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털어놨다.
○ 미분양 축소 업체들 전전긍긍
A건설은 2006년 지방 광역시에서 중형 아파트 300여 채를 분양했다. 올해 말 입주를 앞두고 있지만 분양률은 30% 남짓.
하지만 이 업체는 올해 초 관할 구에 50% 정도 분양이 된 것으로 보고했고 수요자들에게도 “이미 절반 이상 분양됐다”고 말해 왔다. ‘악성 미분양’으로 인식될까 봐 미분양 규모를 줄여 얘기한 것이다.
이 회사는 7월 중 미분양된 아파트의 동, 호수까지 포함된 미분양 목록을 관할 구에 등록해야 할 처지다. 구 측이 이렇게 미분양으로 등록된 아파트를 사는 사람에게만 취득·등록세를 50% 감면해 주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아파트를 분양 중인 B건설 관계자는 “같은 지역에서 단지별로 실제 미분양 규모가 드러나면 업체 간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분양률이 높게 나타난 곳은 미분양이 더러 해소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더욱 외면당할 것이라는 우려다.
○ 계약 해지 요구 빗발
대구 월성-상인지구에서 아파트를 계약한 장모(40·남구 대명동) 씨는 정부 대책이 나온 후 건설업체에 해약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해약 후 같은 지구 내의 다른 미분양 아파트를 계약할 생각이다. 장 씨는 “분양가나 입지여건이 거의 같은 미분양 단지가 많다”며 “어차피 투자가치가 없다면 새로 계약해 세금이라도 줄이고 싶다”고 밝혔다.
광주에서 아파트를 분양 중인 C건설 관계자는 “해약 후 미분양 아파트를 다시 계약하면 세금을 감면받는지를 묻는 전화가 하루에도 여러 통 걸려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계약을 해지한 뒤 같은 아파트 단지의 미분양 아파트를 재계약하면 취득·등록세를 감면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기존 계약자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
분양대행사를 운영 중인 김모 사장은 “추가대책을 기대해 계약을 미루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 ‘미분양 실태 공개’ 요구도
국토해양부는 1월 각 시군구청에 ‘미분양 관련 업무 협조’란 제목으로 “업체들로부터 보고받은 미분양 현황을 일반에 공개하지 말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이처럼 미분양 해소가 더 어려워질 것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수요자들을 중심으로 “단지별 미분양 실태는 아파트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므로 이번 기회에 인터넷 등에 완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실 중개업소 등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미분양 정보가 흘러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 부동산정보업체 관계자는 “미분양 정보는 숨겨도 알려질 수밖에 없다”며 “미분양 정보를 건설업계와 일부 수요자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완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전국 미분양 아파트 추이 | |
2007년 1월 | 7만5616채 |
7월 | 9만658채 |
2008년 1월 | 12만3371채 |
2월 | 12만9652채 |
3월 | 13만1757채 |
4월 | 12만9859채 |
월말 기준. 자료: 국토해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