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곡물-금 등 국제 선물-옵션거래 급증
“묻지마 투자로 값 너무 올라” 폭락 우려도
상품시장은 석유 곡물 금 철 구리 등 국제적으로 거래 및 결제 규모가 큰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가격 변동이 미치는 파장이 큰 상품들이어서 뉴욕상업거래소(NYMEX),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같은 곳에서 주로 선물(先物)이나 옵션 형태로 거래된다.
상품시장이 새삼 글로벌 금융권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지난달 중순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실적 발표가 계기가 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의 여파와 신용경색으로 대부분의 은행이 고전하는데도 골드만삭스는 예상보다 선전한 것.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상품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투자회사이면서 모건스탠리와 함께 이 분야의 양대 축으로 꼽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두 회사의 지난해 상품거래 매출 규모가 전 세계 10대 은행의 상품시장 총매출 150억 달러 중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금융전문가들은 은행과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이 시장에 투자한 규모가 최근 5년간 130억 달러에서 2600억 달러로 무려 1900% 늘어난 것으로 추산했다.
시장조사기관 그리니치어소시에이츠의 컨설턴트 프랭크 핀스트라 씨는 “금융업계 상황을 볼 때 상품거래는 이들의 사업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가 은행들도 지난해 상품거래 전담팀을 경쟁적으로 확장하거나 신설했다.
에너지와 농산물 같은 주요 상품 가격이 불안정한 변동을 이어가면서 헤지(위험 분산)를 위해 이 시장에 들어온 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달러 약세 속에 투자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 역시 크게 늘었고 최근에는 투기세력이 대거 몰린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파생상품 거래 계약은 올해 1분기(1∼3월)에만 4억8900만 건이 성사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장외거래에서는 지난해 9조 달러어치의 계약이 이뤄져 전년보다 26%의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선물이나 옵션 형태로 이뤄지는 상품거래는 ‘지렛대(leverage) 효과’가 크기 때문에 투자금에 비해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는 반면 순식간에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를 볼 가능성도 높다. 2006년 헤지펀드 아마란스가 천연가스 선물에 투자했다가 한 달 만에 66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 결국 청산 절차를 밟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CNN머니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과거 안정적으로 투자하던 연금펀드마저 상품시장에 속속 눈을 돌리면서 ‘거품 현상’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는 “상품시장 가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거품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투자분석가인 매트 매코믹 씨도 “근본적으로 변동성이 큰 상품시장을 피난처처럼 인식하고 투자하는 것은 불장난”이라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비니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로이터통신에 “2분기(4∼6월) 실적에서 상품거래 수익이 지나치게 많다”고 인정했다. 미국 의회도 투기세력이 상품 가격을 지나치게 끌어올리는 원인이라고 보고 규제 강화 작업에 착수했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현재 석유 선물시장에서 투기세력은 전체 투자자의 71%에 이른다.
바이런 도건 상원의원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최근 열린 청문회에서 “현재의 상품시장은 붕괴됐다”며 “가격을 올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투기꾼만 가득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