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 팽창, 상품 시장…투기 과열, 거품 논란

  • 입력 2008년 7월 1일 02시 58분


서브프라임 여파 - 달러 약세 속 투자 대안

석유-곡물-금 등 국제 선물-옵션거래 급증

“묻지마 투자로 값 너무 올라” 폭락 우려도

상품시장은 석유 곡물 금 철 구리 등 국제적으로 거래 및 결제 규모가 큰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가격 변동이 미치는 파장이 큰 상품들이어서 뉴욕상업거래소(NYMEX),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같은 곳에서 주로 선물(先物)이나 옵션 형태로 거래된다.

상품시장이 새삼 글로벌 금융권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지난달 중순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실적 발표가 계기가 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의 여파와 신용경색으로 대부분의 은행이 고전하는데도 골드만삭스는 예상보다 선전한 것.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상품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투자회사이면서 모건스탠리와 함께 이 분야의 양대 축으로 꼽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두 회사의 지난해 상품거래 매출 규모가 전 세계 10대 은행의 상품시장 총매출 150억 달러 중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금융전문가들은 은행과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이 시장에 투자한 규모가 최근 5년간 130억 달러에서 2600억 달러로 무려 1900% 늘어난 것으로 추산했다.

시장조사기관 그리니치어소시에이츠의 컨설턴트 프랭크 핀스트라 씨는 “금융업계 상황을 볼 때 상품거래는 이들의 사업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가 은행들도 지난해 상품거래 전담팀을 경쟁적으로 확장하거나 신설했다.

에너지와 농산물 같은 주요 상품 가격이 불안정한 변동을 이어가면서 헤지(위험 분산)를 위해 이 시장에 들어온 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달러 약세 속에 투자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 역시 크게 늘었고 최근에는 투기세력이 대거 몰린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파생상품 거래 계약은 올해 1분기(1∼3월)에만 4억8900만 건이 성사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장외거래에서는 지난해 9조 달러어치의 계약이 이뤄져 전년보다 26%의 성장세를 보였다.

홍콩이 내년 1분기 개장을 목표로 상품선물거래소 설립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1차 목적은 급증하는 중국의 석유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서지만 파생상품 거래가 가져올 수익과 영향력을 아시아로 끌어오겠다는 야심도 담겨 있다.

그러나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선물이나 옵션 형태로 이뤄지는 상품거래는 ‘지렛대(leverage) 효과’가 크기 때문에 투자금에 비해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는 반면 순식간에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를 볼 가능성도 높다. 2006년 헤지펀드 아마란스가 천연가스 선물에 투자했다가 한 달 만에 66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 결국 청산 절차를 밟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CNN머니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과거 안정적으로 투자하던 연금펀드마저 상품시장에 속속 눈을 돌리면서 ‘거품 현상’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는 “상품시장 가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거품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투자분석가인 매트 매코믹 씨도 “근본적으로 변동성이 큰 상품시장을 피난처처럼 인식하고 투자하는 것은 불장난”이라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비니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로이터통신에 “2분기(4∼6월) 실적에서 상품거래 수익이 지나치게 많다”고 인정했다. 미국 의회도 투기세력이 상품 가격을 지나치게 끌어올리는 원인이라고 보고 규제 강화 작업에 착수했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현재 석유 선물시장에서 투기세력은 전체 투자자의 71%에 이른다.

바이런 도건 상원의원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최근 열린 청문회에서 “현재의 상품시장은 붕괴됐다”며 “가격을 올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투기꾼만 가득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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