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안전한 줄 알았는데” 고객들 항의 줄이어
손실금액 물어주기도… 일반직 전환 희망자 급증
《#1. 시중은행의 프라이빗뱅커(PB)인 김모 씨는 요즘 출근하기가 겁난다. 하루 만나는 고객 7∼10명 중 2, 3명은 손실이 난 펀드 때문에 항의하거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하소연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증시는 계속 변한다고 말씀드리지만, 내 권유로 가입했기 때문에 너무 죄송하고 하루하루가 괴롭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목표액을 채우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고 목표액의 60%를 달성하는 것도 힘들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2. 다른 은행의 PB인 이모 씨는 요즘 동료 PB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울해진다. 펀드와 관련해 고객에게 소송을 당해 손실 난 금액을 물어주거나 고객이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내 고생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기 때문이다. 이 씨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일반직으로 전환하고 싶어 하는 동료들이 부쩍 늘었다”며 “요즘 은행에서는 PB한테서는 ‘피비’린내가 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
각 은행의 PB들이 이렇게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2004년 은행에서 본격적으로 펀드를 판매하기 시작한 후 국내외 증시가 올해처럼 길고, 깊은 조정을 겪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 원금 손실에 투자자 충격 커
특히 적립식펀드는 은행에서 주로 팔렸다. 1일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적립식펀드 판매 잔액은 은행이 44조9160억 원으로 전체 판매 잔액의 76.91%를 차지했다. 증권사(22.28%), 보험사(0.79%)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
그러나 수익률은 참담하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국내 4대 은행에서 지난해 하반기에 많이 판매한 펀드 12개 중 10개는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9개월 수익률이 ―10.30%에서 ―29.84%에 이른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고 펀드 투자에 나선 고객들은 결과적으로 증시의 ‘고점’에 가입한 셈이 돼 원금 손실이 많이 난 만큼 상실감도 클 수밖에 없다.
○ PB들 사이 자성의 목소리도
은행 고객들의 투자 성향이 증권사 고객보다 보수적이고, 주식투자 등으로 손실을 본 경험이 적어 조금이라도 손실이 나는 것을 못 견디는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은행 PB인 최모 씨는 “상당수 고객이 50대 이상인데, 주식투자 경험이 없고 펀드투자도 지난해 처음 시작한 사람이 적지 않아 마이너스 수익률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사와 은행을 함께 이용하는 고객도 ‘은행이 권한 것인데 이럴 수 있느냐’며 증권사 가입 상품의 손실보다 은행 가입 상품의 손실에 더 민감해한다”고 덧붙였다.
은행 PB들 사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PB인 박모 씨는 “돌이켜보니 지난해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중남미 펀드 등 안 판 상품이 없었다”면서 “고객이 원해서 가입한 경우도 있지만 회사의 요구와 실적 때문에 일단 팔고 보자는 생각으로 펀드를 권한 게 아니었는지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PB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지금 PB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계기로 전문화된 지식을 더 쌓고 위험관리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