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뚝심 한국인의 ‘발리에서 생긴 일’

  • 입력 2008년 7월 3일 02시 59분


올 12월 완공되는 샤또 드 발리 리조트 현장. 발리=정혜진 기자
올 12월 완공되는 샤또 드 발리 리조트 현장. 발리=정혜진 기자
이국 땅서 7번의 부도… 이혼… 우울증… 절망 딛고 ‘리조트 대부’로 서다

《1991년 1월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 공항. 열대지방의 겨울바람은 포근했지만 한국인 사업가 한정국(53) 회장에게는 서울의 겨울만큼이나 차가웠다. 잇단 사업 실패에 이어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가구공장마저 문을 닫은 터였다. 갈 곳 없던 그는 3년 전 우연히 갔던 발리를 다시 찾았다. 그에게 발리는 도피처였다. 》

17년이 지난 2008년 6월 한 회장은 발리 리조트 업계의 대부가 됐다. 발리 3대 지주로 꼽히는 그는 여의도 면적의 4배에 육박하는 3306만 m²의 땅을 갖고 있다. 대형 리조트 3곳을 포함해 한 회장의 자산은 수천 억 원에 이른다.

한국에서 2번, 인도네시아에서 7번. 그가 부도를 낸 횟수다.

발리 현지에서 만난 한 회장은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는 믿음과 뚝심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7번의 부도를 견딘 건 뚝심

한 회장의 첫인상은 동네 아저씨였다. 살짝 처진 눈매에 웃는 얼굴, 그러나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는 현지 사람들에게 ‘하리마우’(인도네시아에서 쓰는 말레이어로 호랑이란 뜻)로 불린다.

발리에서도 10년 새 7번의 부도를 겪었으니 눈빛이 날카로울 만도 하다.

“사업 실패 후 도망치다시피 왔으니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한국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 생각에 잠 못 이룬 적도 많았습니다.”

그는 발리의 풍부한 자연 자원에 주목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은 현지에서 잡은 바닷가재를 한국에 수출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보기 좋게 실패였다. 한국으로 실어오고 세관을 거치는 동안 신선도가 떨어져 헐값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한 회장은 가구, 위패(位牌) 등에 잇달아 손댔지만 역시 부도로 이어졌다. 저임금을 이용하려 했지만 현지인의 기술이 떨어져 반품 요구가 잇달았다.

그는 2001년 7번째 위패 공장의 부도 앞에서 자살을 생각했다. 남은 게 없었다. 몇 차례 부도 과정에서 이미 한국의 부인과도 헤어졌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는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란 믿음이 없었다면 그때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고 했다.

○‘현지인이 보지 못한 가치를 보다’

한 회장은 우울증 탓에 6개월 동안 집에만 있었다. 2001년 말 반년 만에 거리로 나선 그는 우연히 친분이 있던 현지인을 만났다.

그 현지인은 “농사도 짓지 못하는 쓸모없는 땅이 있는데 좋은 조건으로 줄 테니 사 달라”고 한 회장에게 요청했다.

발리 남부 ‘쿠타웅아산’ 지역 5만 m²의 땅값은 800만 원. 한 회장은 잔금을 2년 후 갚기로 하고 단돈 몇십만 원에 이 땅을 샀다.

“현지인은 땅의 가치를 농사 여부로만 판단했지만, 저는 빼어난 경치의 잠재력을 봤죠.”

그는 5만 m²에 ‘풀 빌라’(Pool Villa·수영장 등이 딸린 독립된 빌라) 9채를 지었다. 발리에 특급 호텔이 즐비하지만 독립 공간이 보장되는 풀 빌라가 전무했기 때문. 그의 계산은 적중해 풀 빌라에 예약이 폭주했다. 그는 풀 빌라 42채를 추가로 지어 ‘드림랜드 리조트’로 이름을 붙였다. 7번의 실패 끝에 얻은 첫 성공이었다.

○위기가 진정한 기회

2005년 ‘발리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부동산 값은 폭락했다. 그에게 두 번째 기회가 온 셈이다.

그는 현재 ‘샤토 드 발리’ 리조트 터 15만2000m², ‘파당바이’ 리조트 터 9만9000m² 등을 헐값에 사들였다. 매입가는 현 시세의 10%인 3.3m²당 3만∼4만 원.

현지인들이 추가 테러 공포에 떨 때 그는 새로 사들인 땅의 경치에 가슴이 벅찼다.

그는 “한국의 외환위기처럼 인도네시아의 테러 공포도 일시적일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다. 천혜의 절경이 일시적 공포를 극복시킬 것이란 믿음이었다.

당시 사들인 ‘샤토 드 발리’ 리조트 터 등은 인근에 세계적 리조트가 잇달아 들어설 정도로 사업성이 뛰어난 곳이었다.

이 땅들은 현재 리조트로 개발 중이거나 완공돼 한 회장을 ‘발리 드림’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난 실패와 친한 사업가”

6월 23일 한 회장은 샤토 드 발리 리조트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과 섞여 있었다. 하루 종일 현장을 챙기는 게 습관이 됐다. 그는 “나는 성공보다 실패와 친한 사업가”라며 “그 덕분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해외 투자에 나섰다가 자금만 묶인 한국인들에게도 한마디 했다. 그는 “실패할 때마다 현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며 “적어도 10년 정도는 몸부림하며 현지를 파악해야 기회가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발리에 진 빚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육원을 지을 계획이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을 자신의 리조트에 취업시키려는 것. 한국인보다 한국음식을 더 잘하는 29세 현지인 아내도 한 회장의 계획에 적극 찬성이다.

한 회장의 사무실에는 드림랜드 그룹의 사훈이 붙어 있었다. ‘머리를 써라, 안 되면 땀을 흘려라.’

발리=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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