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증시에서 코스피지수는 장중 전날보다 42.77포인트(2.63%)나 내린 1580.83까지 밀렸다. 하지만 차츰 하락폭이 줄어 전날보다 17.06포인트(1.05%) 하락한 1,606.54로 마감돼 간신히 1,600선을 회복했다.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10.30포인트(1.85%) 내린 546.49로 거래를 마쳤다.
증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전날 정부가 물가관리를 위해 가계 및 기업의 대출을 죄겠다고 밝힘에 따라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이 같은 각종 악재를 몰고 온 고유가 사태는 실물 경제를 뒤흔든다는 점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와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외국인에 이어 개인마저 거센 매도
최근 증시에서는 주식을 사려는 이는 없는데 매도 물량만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외국인들의 거센 매도 공세다.
외국인은 이 날도 코스피시장에서 4470억 원을 순매도(매도액에서 매입액을 뺀 것)하며 19일째(거래일 기준) '팔자'에 나서고 있다.
올해 외국인들의 매도 공세는 지난해 수준을 뛰어넘는다. 지난해 1년 동안 24조7117억 원을 순매도했는데 올해는 불과 6개월여 만에 18조6240 억원을 순매도했다.
모건스탠리 박찬익 상무는 외국인 매도와 관련해 "인플레이션과 각국의 금리 인상 움직임이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신흥 시장에서 돈을 미리 빼는 것"이라며 "그동안 투자비중이 높았던 한국 시장에서 주식을 팔 수 있는 여력이 다른 나라보다 많은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의 연속 매도로 수급 기반이 약화된 상황에서 그동안 저가(低價) 매입 기조를 유지하던 개인투자자마저 매도로 돌아섰다. 개인투자자는 3일 2467억 원을 순매도하는 등 최근 4일 연속 순매도했다.
●"서브프라임 사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거대한 악재"
고유가 사태는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다는 점에서는 서브프라임 사태와 얼핏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는 미국에서 발생한 신용경색 문제로,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는 중국 등 신흥국가들의 실물경제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반면 고유가는 신흥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경제의 기초체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
외국인이 서브프라임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최근에도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에서 거센 매도공세를 벌이고 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서브프라임 사태 때는 펀드 환매 등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신흥국 주식을 팔았다. 반면 최근에는 고유가로 신흥국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해 주식을 팔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진투자증권 박희운 리서치센터장은 "신용경색을 불러온 서브프라임 사태와 달리 고유가는 전 세계 경제의 기초체력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강력하고 위험한 악재"라고 말했다.
●"고유가, 해결방안 찾기 어려워"
서브프라임 사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통해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면서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반면 고유가 사태는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고유가는 중국 등 신흥국의 성장으로 석유 소비가 늘어나고 석유에 대한 투기가 급증한데다 금리 인하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등 여러 요인으로 비롯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생산을 늘리려고 하지 않아 공급을 확대해 유가를 내리기는 힘든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석유 투기를 규제하고 미국 내 석유 생산을 늘리자는 등의 제안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실제 법안이 만들어져 시행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다 이들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지도 불투명하다.
결국 세계 경제는 유가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적인 투자은행(IT)들의 유가 전망은 크게 엇갈린다.
골드만삭스는 2010년 안에 유가가 최고 배럴당 20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전망한 반면, 리먼브러더스는 올해 안에 유가는 70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HMC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유가가 떨어진다고 해도 그 시기가 언제인지가 중요하다"며 "세계 경제가 망가진 다음에 유가가 내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