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현장 구호차량 진입전 탐사
위험지역 알려줘 2차 사고 예방
지뢰 제거에도 2억엔이나 쏟아
“높은 이상에는 기술 - 돈 따라와”
《지진대국 일본에는 강진(强震)이 발생했을 때 응급구호물자를 실은 트럭이나 피해복구용 차량보다 먼저 피해지역으로 달려가는 차량이 있다. 땅속 탐지레이더 등 특수 장비를 탑재한 마이크로버스다. 공식 명칭은 공동(空洞)탐사차. 공동탐사차는 시속 45km의 속도로 달리면서 지하 1.5m 이내에 있는 땅속 구덩이를 샅샅이 찾아낸 뒤 위험지역 지도를 만들어 당국과 구호기관에 알려준다. 순찰차량과 응급지원차량이 멀쩡한 도로인 줄 알고 무심코 지나가다 큰 사고를 당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공동탐사차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사망자 65명을 낸 2004년 10월 니가타주에쓰(新潟中越) 지진. 공동탐사차 3대가 3일 동안 피해지역 도로 814km 구간을 훑으면서 찾아낸 땅속 구덩이는 무려 400개였다. 이 특수차량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는 기업은 세계에서 딱 한 곳. 지오·서치라는 일본의 ‘동네기업’이다.》
○ 13대가 구덩이 1만여개 찾아내
지오·서치 본사와 공장이 위치한 곳은 도쿄(東京) 오타(太田) 구의 주택가. 이 회사의 2층짜리 사옥은 10여 가구가 세 들어 있는 인근 다가구주택과 비슷한 크기였다.
도미타 히로시(富田洋) 회장은 “인터뷰를 하기 전에 먼저 실물을 보자”며 주차장에 세워진 ‘갈매기 1호’로 향했다.
도미타 회장이 전원을 켜자 차량 내부에 있는 모니터 2대가 밝아졌다. 모니터 하나에는 차량의 앞쪽과 양 옆쪽의 영상,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지도 정보가 동시에 비쳤다. 다른 모니터에는 땅속에 구덩이가 있는지 없는지 보여주는 영상이 나타났다.
도미타 회장은 “건강진단을 할 때 사용되는 뢴트겐과 똑같은 원리”라며 “이 차와 똑같은 기능을 가진 차량 13대가 일본 전역에서 활약 중”이라고 말했다.
공동탐사차 13대가 지금까지 누빈 거리를 모두 더하면 지구 약 2바퀴 거리에 해당한다.
그동안 찾아낸 땅속 구덩이는 1만여 개에 이른다. 그중에는 아키히토(明仁) 일왕 즉위식 퍼레이드가 예정돼 있던 도로 아래에 도사리고 있던 큰 구덩이도 포함돼 있다.
○ 도쿄올림픽 직전 건설한 도로 부실공사 많아
흔히 ‘일본의 토목공사=안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는 부분적인 진실일 뿐이다.
지오·서치가 공동탐사차 개발을 의뢰받은 계기가 된 것은 무더기 도로 부실공사였다.
1987년 6월 8일 도쿄에서는 국토교통성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일이 벌어졌다. 도쿄의 심장부인 긴자(銀座)의 간선도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직경 5m, 깊이 1.5m짜리 구덩이가 갑자기 생긴 것.
더 큰 일이 벌어진 것은 다음 날이었다. 국토교통성이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있던 시간에 도쿄 시내의 도로 4곳이 추가로 주저앉았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첫 사고가 난 8일부터 2주간 총 12곳에 큼지막한 구덩이가 패었다. 주간지들은 “대지진의 전조”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전문가들이 원인을 조사한 결과 다행히 지진과는 무관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이 원인이었다. 단기간에 도로망을 확충하기 위해 날림공사를 한 탓에 그 후유증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도미타 회장은 “전국의 도로에 위험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국토교통성이 당시 도쿄전력의 의뢰로 터널 위에 생긴 공동을 조사하던 우리 회사에 공동탐사차 제조를 의뢰했다”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90년 실용화에 성공했다”고 회고했다.
겉보기에 멀쩡한 도로가 주저앉는 사고는 1987년 이후에도 약 4년간 꼬리를 물고 이어져 적지 않은 부상자를 냈으나 공동탐사차의 본격적인 활동을 기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해 1994년 이후에는 거의 사라졌다.
○ 도요타-소니 등 이끌고 캄보디아에서 지뢰 제거 활동
직원이 70여 명에 불과한 동네기업이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비결을 묻자 도미타 회장은 “고코로자시(志·높은 뜻 또는 이상)”라고 대답했다.
지오·서치가 추구하는 이상을 설명하자면 캄보디아와 태국 접경에 있는 세계적 문화유산인 카오프라비한 사원에 얽힌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카오프라비한 사원 일대는 최근에는 대형 관광버스가 줄을 잇는 인기 관광지지만 불과 2년 전만해도 사람들이 얼씬도 못하던 지뢰밭이었다.
이곳에 묻혀 있던 지뢰를 제거한 주역은 ‘인도 목적 지뢰 제거 지원회(JAHDS)’라는 일본의 비영리 자원봉사 단체로 일본삼성, 세콤, 도요타자동차, 혼다자동차, 소니, 일본IBM 등 세계적인 대기업이 대거 회원으로 참여했다.
1998년 이 단체를 조직하고 2006년 목표 달성 후 해산할 때까지 사무국장 자격으로 실무를 이끈 이가 바로 도미타 회장이다. 지오·서치가 카오프라비한 사원을 포함해 캄보디아 지뢰 제거를 위해 쏟아 부은 자금만 해도 2억 엔이 넘는다.
도미타 회장은 “우리처럼 작은 회사가 어떻게 세계적인 대기업을 줄줄이 동참시킬 수 있었겠느냐”며 “인류에 유익한 일을 하겠다는 높은 뜻이 이들을 움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회사의 주력상품 중에는 도로 안에 있는 각종 배선을 투시하는 시스템도 있다”며 “금속탐지기에도 포착되지 않는 플라스틱 지뢰를 찾기 위해 개발한 기술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미타 회장은 “창업 이래 단 한 해도 적자가 나지 않았다”며 “높은 이상이 있으면 기술과 수익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