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16분간 22원이나 폭락
1040원 되자 저점 오인 매수 ‘눈물의 손절매’
거래량 폭주로 마감환율 5분 늦게 고시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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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외환시장 마감 20분 전인 오후 2시 40분경, 각 시중은행의 딜링룸에서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날 하루 종일 1040원대 후반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이 갑자기 수직 상승하기 시작한 것. 곧이어 2시 44분, 1057원까지 올랐다. 이대로 장이 끝난다면 2005년 10월 24일(1058.10원) 이후 2년 8개월여 만에 환율이 최고치로 마감될 상황이었다.
이때 반전이 시작됐다. ‘달러 팔자’ 주문이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환율은 순식간에 1035원(마감 환율)까지 떨어졌다. 16분간 무려 22원이 떨어진 것.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급등을 막기 위해 당국이 올해 최대 규모의 매도 개입을 한 결과였다. 장 막판에 거래량이 폭주하면서 처리가 지연돼 마감 환율이 장이 끝난 지 약 5분 뒤에야 고시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 외환딜러들, “당국, 끝까지 투매”
이날 외환시장은 주가 폭락과 국제유가 상승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초반부터 환율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정작 시장에서는 당국의 매도 개입 가능성 때문에 사자세와 팔자세가 내내 치열하게 맞섰다. 좁은 범위에서 등락을 반복하던 환율은 장 막판 당국의 ‘달러 폭탄’을 맞은 것.
국민은행 트레이딩부 노상칠 팀장은 “환율이 1040원쯤으로 내려가자 이게 저점인 줄 알고 달려드는 딜러가 많았다. 낙폭이 커지자 이들 중 일부는 눈물을 머금고 손절매를 했다”고 말했다. 이는 환율 하락폭을 더 키운 요인이 됐다.
한 외환딜러는 “외환당국이 평소엔 약간씩만 개입했는데 이날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끝까지 투매한 것 같다”고 상황을 전했다.
정부는 외환시장의 개입 여부나 규모에 대해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지만 외환딜러들은 이날 당국이 시중은행 두세 곳을 통해 30억∼40억 달러를 팔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환율 안정 효과 있을지는 불투명”
최근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성장에서 물가안정으로 돌아선 후 외환당국은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때때로 매도 개입을 해왔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오르고,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도량은 10억 달러가 안 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국무회의에서 “국정목표를 물가안정에 둬야 한다”고 강조한 이후 당국의 개입 규모는 점점 커졌다. 특히 2일은 정부가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발표하면서 “물가안정에 힘쓰겠다”고 거듭 밝힌, 상징적인 날이기도 했다.
이 같은 정부의 개입을 두고 일각에서는 “외환보유액만 축낼 뿐 정작 의도했던 환율 안정 효과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한 외환딜러는 “시장에서는 정부가 달러를 내놓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개입이 시작되면 싼값에 달러를 매입해 환율이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일도 당국의 개입으로 환율이 1035원까지 내려왔지만 바로 다음 날인 3일 10원이 올라 1045원으로 끝났다.
그러나 2일의 개입으로 당국은 시장에 “한국 정부의 물가안정 의지를 의심하지 말라”는 신호를 확실히 전달했다. “2581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가진 정부와 정면대결해 볼 생각이 아니라면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메시지였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