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간부는 “면접 직전까지만 해도 지주사와 은행 간 업무 협조와 연속성 등을 위해 강정원 행장이 회장을 겸직하는 게 좋다는 쪽으로 이사 대다수가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라고 말했다.
황영기 전 회장이 9월 출범할 KB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되면서 회추위를 구성하는 국민은행 사외이사 9명의 ‘막강 파워’가 금융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외이사들이 자칫 ‘거수기’ 역할을 하기 쉽지만 국민은행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 KB금융지주 초대회장 선임과정에 ‘막강 파워’
KB금융지주 초대 회장 선임 과정에서 판세가 뒤집힌 것은 면접 과정에서 사외이사들이 황 전 회장에게 몰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한 사외이사는 “면접에서 황 전 회장의 회장-행장 분리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고 특히 인수합병(M&A)과 비은행부문 강화 주장 등 이사진의 생각에 들어맞는 비전과 액션 플랜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강 행장에게 기울어졌던 이사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의 ‘막강 파워’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초 감사 선임 과정에서 사외이사들은 금융당국이 ‘은근히’ 밀던 인사가 아닌 다른 인물을 선택해 은행 집행부와 당국을 당황하게 했다.
지난해 임원 선임을 위한 회의에서는 인사 청탁이 들어온 사실이 공개됐고 “그 사람은 제외하자”고 결정한 일도 있었다는 게 한 사외이사의 전언이다. 금융당국에서는 국민은행 사외이사는 ‘연구대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사외이사의 ‘입김’ 때문에 집행부에서는 중요한 사업이 있을 때마다 사업 시행 초기부터 사외이사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최근 인수한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에 대해서도 강 행장이 초기부터 4, 5차례 사외이사들과 간담회를 열어 진행 사항을 상세히 보고하면서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임원 수에서도 사외가 9명으로 사내이사 5명보다 많다.
○ 일부선 “신속한 의사결정 어려움” 지적도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의 독립성은 선발 과정에 있다고 사외이사들은 입을 모은다.
사외이사에 공석이 생기면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된 ‘사외이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자체 추천과 헤드헌팅 업체의 추천을 받아 후보 풀(pool)을 만든 뒤 면접 등을 통해 새 이사를 뽑는다. 이사들의 전문분야를 구분해놓고 해당 분야에 맞는 사람을 뽑으면서 정부 등의 외압을 배격하는 전통을 구축한 것. 사실 은행에 정부 지분도 없으며 사외이사중에 관료 출신도 없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고 있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황 전 회장의 선임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독립성을 확보한 채 경영진을 감시 견제하는 사외이사 체제만큼은 국민은행이 국내에서 가장 바람직한 구조”라고 평가했다.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의 결정에 자주 제동을 걸면서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감시가 매서운 만큼 경영진도 긴장할 수밖에 없어 최고경영진에 적절한 자극을 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한 사외이사는 “황 전 회장에게 기회를 줬지만 기대에 맞는 실적을 내지 못하면 언제든지 교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