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경영]“윤리 ‘기초 공사’ 새로 했더니 경쟁력 쑥쑥”

  • 입력 2008년 7월 7일 05시 55분


중소 배관업체를 운영하는 김모(47) 사장은 설날을 앞둔 2월초 대우건설의 임원 집에 과일 한 박스를 보냈다. 협력업체 사장으로서 보낸 ‘인사’가 아니라 오랜 친구에 대한 가벼운 성의였다. 그러나 며칠 후 김 사장은 택배회사로부터 “반송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임원이 선물을 거절한 것.

건설업계가 달라지고 있다. 윤리경영이 확산되면서 윤리규범, 윤리교육, 윤리평가 시스템 등이 정착되고 있다.

호황을 맞고 있는 해외 건설에서도 윤리경영은 수주를 위한 핵심 키워드가 됐다. 발주 기관에서 시공사를 선정할 때 건설업체의 윤리 수준을 보기 때문이다.

○ 윤리가 곧 경쟁력

지난해 국민총생산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였다. 산업별 해외 수출액에서 건설은 철강에 이어 9위(180억 달러)였다.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공헌도가 매우 높은 셈이다.

대한건설협회 권홍사 회장은 “건설이 국가에 기여하는 만큼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투명하지 못했던 건설업계의 관행이 국민의 기억에 남아 있는 까닭이다.

건설업계는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윤리경영이 국제 기준이 된 데다 국내에서도 수주 경쟁력과 브랜드 선호도의 관건이 됐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윤리경영이 본궤도에 오른 건 2003년 무렵부터다.

현대건설은 2003년 윤리강령과 실천규범을 만들고 ‘윤리교육 이수제도’를 운영 중이다. 포스코건설도 같은 해 윤리규범 선포식을 가진 데 이어 2004년부터는 윤리규범 특별 약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업체와는 거래를 줄이거나 아예 끊어버리는 제도.

‘비윤리 행위 신고 보상제도’도 확산되고 있다. 포스코건설과 GS건설은 금품수수 등 비윤리적인 행위를 신고하면 최고 5000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한다.

○ 윤리경영 시스템 구축

건설업계는 윤리 선포식을 넘어 윤리경영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있다.

삼성건설은 2000년 당시 업계에서 드물게 전자입찰제도를 도입했다. 직원이 개인적 친분으로 협력업체와 계약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삼성은 2005년 전자계약제도를 도입했고, 2006년부터는 전자세금계산서 발생 시스템을 구축했다.

롯데건설은 윤리경영 지원을 전담하는 ‘윤리사무국’이라는 부서를 별도로 두고 있다. 자재 조달, 각종 계약 등에서 부조리가 없도록 관리하는 부서다.

대우건설, 금호건설, 쌍용건설 등도 윤리경영 조직을 별도로 두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모범기업으로 꼽히는 GS건설은 2005년부터 분기별로 조직의 윤리 상태를 스스로 진단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 국제 규범이 된 ‘윤리 라운드’

한국 건설업계는 2007년 사상 최고인 398억 달러어치를 해외에서 수주한 데 이어 올해 400억 달러 이상의 해외 수주를 예상하고 있다. 이는 2007년 이전 사상 최고였던 165억 달러(2006년)의 2.5배에 이르는 규모다.

이 같은 호황을 이어가기 위한 관건 중 하나는 기업 윤리의 국제적 규범을 만들어 적용하는 ‘윤리 라운드’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윤리경영의 국제 기준을 담은 ‘ISO 26000’ 제정을 앞두고 있다.

해외에서 선진국 건설업체들과 경쟁하려면 윤리 경영이 전제 조건인 셈이다.

한국토지공사와 한국주택공사 등 건설 관련 공기업도 윤리 라운드와 관련한 대비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토공과 주공은 각각 2005년과 2006년 ‘유엔 글로벌 콤팩트’(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등의 10가지 원칙에 대한 기업들의 자발적 서약)에 가입했다.

○ 사회공헌도 윤리경영의 핵심

올해 초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건설업계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현대건설, 쌍용건설 등의 직원들은 단체로 기름제거 작업에 나섰다. 사회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것도 윤리경영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삼성건설과 대림산업, 쌍용건설 등은 한국해비타트(서민 주거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기구)와 함께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친환경 사회공헌 활동이 눈에 띈다.

대림산업과 SK건설은 본사와 각 현장을 중심으로 ‘1산 1천(川) 1거리 가꾸기 운동’을 하고 있다. 가까운 산과 강, 거리 중 한 곳을 골라 가꾸는 방식이다.

어린이들에게 친환경 교육을 하는 SK건설의 ‘어린이 환경사랑 학교’, 삼성건설의 친환경 운동인 ‘에코드라이브’ 등도 관심을 끌고 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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