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놈의 메뉴판 때문에 내가 한달을 들볶였어”

  • 입력 2008년 7월 7일 20시 08분


"저놈의 메뉴판 때문에 내가 한달을 들볶였어"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 전면 시행을 하루 앞둔 7일, 서울 신촌에서 W갈비집을 운영하는 최재희(52) 씨는 가게 벽에 새로 붙인 메뉴판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최 씨는 80만원을 들여 식당 내 메뉴판 7개를 교체했다.

최 씨는 "정부에서 쇠고기 원산지를 표시하라고만 했지 어떻게 표시 하라는 말이 없어 '국내산'과 '호주산'이라고만 써 놨다"며 "그런데 며칠 전 신문을 보니 한우와 육우도 표시해야 한다고 해서 메뉴판을 두 번이나 새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본격화돼 수입처가 바뀌면 메뉴판을 또 갈아야 한다"며 "정부가 제대로 된 지침도 없이 원산지 표시 안 하면 수천만 원을 물리겠다며 상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8일부터 시행되는 새 농산물품질관리법에 따르면 쇠고기 원산지를 고의로 속여 표시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메뉴판 표기 방식 우왕좌왕

일부 음식점들은 이날까지도 표시 방식을 모르겠다며 난감해 했다.

구이와 탕, 냉면 등 쇠고기가 일부 재료로 들어가는 경우 원산지 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 K김밥집 주인 박모(42) 씨는 "좁은 메뉴판에 원산지를 일일이 표시하기도 귀찮고 정육점에서 사다 쓰는 고기라 원산지를 알 수도 없다"며 '쇠고기 김밥'을 아예 메뉴에서 삭제했다.

업소마다 메뉴판 교체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수십만 원을 들여 메뉴판 코팅 작업을 새로 한 음식점이 있는 반면 메뉴판 위에 유성펜으로 원산지만 써놓은 곳도 있었다.

서울 마포구 한 고기집 주인은 "'소비자가 알기 쉽게 표시하라'고만 쓰인 공문이 출처도 안 찍힌 채 날아왔다"며 "A4 종이에 원산지를 써 붙이긴 했는데 맞게 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명예 감시원을 통해 음식점마다 책자를 돌리긴 했지만 공문 발송을 통한 원산지 표시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홍보 부족을 시인했다.

●단속 실효성 의문

식당업주들은 원산지 표시제로 쇠고기의 안전성이 개선되거나 소비가 늘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입을 모았다.

쇠고기를 공급받을 때 업체로부터 도축검사증명서나 수입필증 등 원산지 관련 자료를 넘겨받지만 식당 주인이나 요리사가 허위 여부를 확인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무교동의 한 고기집 요리사 이모 씨는 "베테랑 요리사도 고기만 보고는 원산지를 가려내기 힘들다"며 "단속 공무원의 인원도 적겠지만 설사 단속을 나와도 표시된 원산지를 정확히 식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쇠고기 원산지를 철저히 가리겠다고 하는데 쇠고기 다시마 같은 조미료까지 단속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애초 검역과정에서 해결해해야 할 문제를 민간에 떠넘긴 꼴"이라고 말했다.

음식점을 찾은 손님들의 반응도 싸늘했다.

회사원 김중한 씨는 "한우와 비한우를 구별하는 것과 달리 미국산과 호주산은 구별이 어려워 원산지 표시를 믿을 수 없다"며 "이번 광우병 파동으로 쇠고기와 멀어진 사람들이 원산지를 밝힌다고 되돌아오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광영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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