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는 사람은 없고 팔려는 사람만 있다. 수급의 균형이 깨진 지 이미 오래다."(유진투자증권 박희운 리서치센터장)
국내 증시가 처한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악재란 악재가 모두 겹쳐 있고 사방을 둘러봐도 호재는 안 보인다.
주가를 끌어내리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외국인의 '팔자' 행진이다. 8일에도 2502억 원을 순매도(매도액에서 매입액을 뺀 것)한 외국인은 22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가고 있다.
6월 이후 아시아 증시 외국인 순매매 현황(8일 현재)을 보면 외국인은 한국에서 6조3343억 원을 순매도해 아시아 증시에서 가장 많이 팔아치웠다. 외국인은 대만(5조6240억 원 순매도) 인도(2조5980억 원 순매도) 등 최근 신흥 시장에서 돈을 빼내는 추세다.
신영증권 김지희 연구원은 "고유가에다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외국인이 신흥 시장에서 전반적으로 주식을 매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신흥시장 가운데 한국은 그동안 외국인 투자비중이 워낙 높았고, 시장규모가 커 현금화가 쉽다는 점 때문에 더 많은 외국인 매도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은 2005년 이후 3년 6개월여 간 한국 주식시장에서 총 70조5381억 원을 순매도해 완연한 '팔자' 기조를 나타내고 있다. 기관, 개인과 함께 증시의 주체세력인 외국인이 거센 매도세로 나서면 국내 증시의 수급 기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둔화도 악재다. 소비가 줄면 기업이익도 덩달아 감소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2분기(4~6월) 국내 상장사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정도(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추정)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의 환율정책 변화와 경기침체 여파로 하반기(7~12월)에는 기업실적이 악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최근 물가상승으로 인해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취하고 있는 긴축기조도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신증권 구희진 리서치센터장은 "각국이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하반기에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되면 유동성이 크게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 오현석 투자정보파트장은 "지금 한국 증시는 탈진 상태"라며 "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거나 국민연금이 주식을 대량 매입하는 등 분위기를 반전시킬 요인이 나오지 않는 이상 금융시장의 탈진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8일 코스피지수의 폭락은 이 같은 시장의 우려감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