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전회장 “모두 내 책임… 아랫사람 선처를”
10일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조준웅 특별검사가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 징역 7년에 벌금 3500억 원을 구형하자 법정은 한순간 술렁거렸다.
방청석에서 숨죽이고 있던 삼성전자의 윤종용 고문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고, 황창규 사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반면 이 전 회장 등 피고인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특검의 구형을 들었다.
조준웅 특검은 “이 사건의 실체는 대주주인 재벌 총수가 경영 지배권을 행사하는 구도에서 비서실을 통해 사적 이익을 도모하고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라며 “삼성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글로벌 기업으로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 같은 구조적 불법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 특검은 “장기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는 변명에 일부 수긍할 수 있는 면이 있고, 삼성의 최고 경영진으로서 경제 발전에 기여해온 점, 포탈한 세금을 납부한 점 등을 고려한다”며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 전 회장은 최후 진술을 통해 “해외 기업과의 경쟁에만 신경 쓰느라 주변 문제를 소홀히 했고 우리 사회와 대화도 부족했다. 모두가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다”며 “나라경제가 어려운데 20년 동안 정성과 혼을 바쳐 일해 온 임직원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일할 수 있게 격려해 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변호인단은 “사채를 헐값에 넘겨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지만 자본금이 순증되는 효과와 주주들 간에 부의 이전만 있었고 이후 회사는 오히려 크게 성장했다”며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는 “차명주식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불가피한 방편이었지 재산 증식을 꾀하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특검의 구형에 따라 이제 관심은 재판부로 쏠리고 있다. 선고는 이달 16일 내려진다.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 민병훈 부장판사는 최근 매일 밤 12시 넘어서까지 야근하며 기록을 검토하고 판결문 작성을 위한 준비 작업에 매진해 왔다.
재판부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배임)를 유죄로 인정할 경우 피고인의 이득액이 50억 원이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조세포탈죄는 포탈세액이 연간 10억 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 내려진다. 다만 범죄의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는 유기징역의 형기를 절반으로 줄여주는 ‘작량감경’을 할 수 있다.
이 전 회장 측은 “만에 하나 실형이 선고되더라도 피고인의 건강 등을 감안해 법정구속만은 피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은 1심에서 징역 6년 구형에 3년의 실형이 선고됐지만 법정구속은 피했다. 공금횡령 혐의의 박용성 두산 회장은 1심에서 징역 6년 구형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형이 내려진 바 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